박종윤 소설가

 

승상부로 들어간 여포는 밤새도록 동탁에게서 초선에 대한 기별이 올까 싶어 기다렸으나 별 소득이 없자 울컥해 홍예문으로 뛰어 들었다. 아무리 의부(義父)라 하나 동탁의 호색함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벌써 동탁과 신방을 치른 머리 빗던 초선의 모습만 멀찍이서 바라보고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막상 홍예문을 뛰쳐나왔으나 초선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 머금은 초선의 애틋한 양자(樣姿)가 눈에 삼삼 어려서 배겨날 수가 없었다. 여포는 다시 홍예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동탁은 분합문을 열어 놓고 대청에 나와 앉아 있었다. 여포가 홍예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동탁은 점잖게 물었다. “밖에는 모두 별일 없느냐?” “무사합니다.”

여포는 공손히 대답하고 동탁의 옆에 시립하고 있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조금 있으려니 동탁의 아침상이 나왔다. 동탁은 산해진미를 벌려 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포가 곁눈으로 내실을 슬며시 바라보니 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곳에 초선이 고운 얼굴을 드러내고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포를 향해 싱긋 웃으며 추파를 던져 정을 흠뻑 보냈다. 여포는 신혼이 표탕(飄蕩)했다. 그럴수록 여포는 자꾸자꾸 발 안쪽으로 곁눈질이 갔다.

동탁은 밥을 먹다가 흘깃 여포를 바라보았다. 여포의 시선이 자주 초선한테로 옮겨지는 것을 보았다. 동탁은 질투의 감정이 버쩍 일었다.

“별일 없으니 봉선이는 물러가거라.”

동탁은 점잖게 여포에게 명을 내렸다. 여포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아니 갈 수도 없었다. 그는 비틀 걸음으로 기운 없이 밖으로 나갔다.

동탁은 초선을 맞이해 들인 뒤 색에 고혹돼 달포 동안이나 정사를 다스리지 않았다. 동탁은 마침내 몸살이 났다. 초선은 의상을 풀지 아니하고 동탁의 비위를 맞추면서 입에 혀와 같이 극진하게 간병을 했다. 동탁은 한 시도 초선이 옆에 없으면 자리가 허전한 것 같았다. 여포는 동탁이 병이 나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승상부로 들어갔다. 동탁은 마침 잠이 들어 있고 초선은 옆에서 간병을 하고 있다가 여포와 눈이 마주쳤다. 여포의 심장은 벌컥거렸고 머릿속은 녹는 듯했다. 초선은 침상 옆에서 만단수심을 호수 같이 눈 속에 머금은 채 멍하니 여포를 바라보았다. 여포의 푸른 눈도 초선을 향했다. 초선은 손가락으로 자기 심장을 가리킨 후에 다시 손가락으로 동탁을 가리켰다. 그런 다음 수정 같은 눈물이 샛별 같은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졌다. 초선은 옥 같은 손으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씻었다. 마음으로는 기가 막히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사모하지만 동탁이 버티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초선의 그 모양을 바라보는 여포의 마음은 마치 돌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듯했다. 여포는 동탁이 잠이 든 것을 틈타 팔을 늘여 초선의 손을 잡으려했다. 그때 동탁이 어렴풋 잠이 깨었다. 두 눈을 몽롱이 떠서 앞을 보니 여포가 들어왔는데 그가 손을 뻗어 무엇을 잡으려했다. 동탁은 몸을 들어 침상 뒤를 돌아보니 초선이 싱긋 웃으며 여포를 바라보며 함께 손을 내밀고 있었다. 동탁은 왈칵 성이 돋았다.

“이놈, 네가 감히 내 애첩을 희롱하느냐!”

동탁은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자 좌우편 시자를 불렀다.

“저놈 여포를 내쫓아라! 이제부터는 다시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여포는 하는 수 없이 한을 품은 채 쫓겨 나왔다. 여포가 기막힌 생각에 빠져 걸어가고 있을 때 동탁의 모사 이유를 만났다. 이유는 여포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근심스럽게 물었다. “여 장군이 예전과 같이 쾌활하지 못하니 어찌된 일이오?” “흥, 쫓겨난 신세에 안색이 좋을 리가 있나. 난 이젠 동 승상과는 작별이야!” 이유는 벌써 눈치를 챘다. 초선의 일로 치정 관계라는 것을 짐작했다.

“두 분 정리에 작별이란 말씀이 될 말이오. 딴 소리 마시고 어서 승상부로 다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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