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밤이 이미 어두웠다. 얼마쯤 가려니 홍사 초롱 한 쌍이 어두운 밤길을 비추면서 여포가 창을 비켜들고 급히 말을 달려오다가 왕윤과 마주쳤다. 여포는 불빛 아래서 왕윤을 발견하자 화가 꼭두까지 뻗쳤다.

“앞에 오는 이는 왕 사도가 아니시오?”

“오오, 여 장군이신가. 어디를 다녀오시오?”

왕윤은 반가운 듯 여포의 앞으로 바짝 말머리를 다가세웠다.

“어디를 갔다 오는 게 무슨 말이냐?” 여포는 눈을 부라리며 가까이 오는 왕윤의 멱살을 바싹 잡아 낚아챘다. “당신이 사람이오? 그래, 초선이를 나한테 준다고 허락해 놓고 지금 태사한테 보내고 돌아오니 그래 사람이냐 말야. 누굴 희롱하는 거냐!” 여포는 호통을 치며 왕 사도의 목줄을 바싹 졸랐다.

왕윤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여 장군, 조금 참으시오. 우리 집 초사로 갑시다.”

그때서야 여포는 왕 사도의 멱살을 놓고 그의 집 후원 별당으로 들어갔다. 왕윤은 아직도 성이 가라앉지 않은 여포를 자리에 앉힌 후에 눈을 한 번 크게 떴다.

“장군은 나를 의심하시오?”

“내가 지금 의심하지 않게 생겼소? 당신이 초선이를 좋은 전거에 태워 태사한테 보냈다면서? 그게 무슨 개수작이야. 개돼지 같은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야. 이 더러운 늙은 것이.” 여포는 주먹을 번쩍 들어 노재상 왕윤의 면상을 갈기려 했다.

왕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껄껄 웃었다.

“허허, 장군께서 오해를 했구려. 자초지종 얘기를 할 테니 좀 들어 본 뒤에 시비를 하시오. 어제 나는 조당에 나갔다가 태사를 만났소이다. 나를 보고 하는 말씀이 긴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우리 집에 찾아 오시겠다는데 못한다고 할 도리가 있소? 그래 음식을 약간 준비하고 청했더니 태사께서 약주를 드시다가 하는 말씀이 ‘당신의 딸 초선이란 미인이 있는데 우리 아들 봉선이와 약혼을 했다니 참 말이오?’ 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내가 한 번 대면을 하겠소, 해서 거절할 수 없어 초선을 나오라고 했지. 그래 초선에게 장차 시아버님이 되실 동 태사이시다, 하고 뵙게 했소이다. 그랬더니 태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은 날짜가 매우 좋은 양신(良辰)이니 이 애를 내가 데리고 가서 오늘 밤에 봉선이와 혼인을 시키겠소.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내가 어쩌겠소. 장군도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시아버지 되실 태사께서 친히 오셔서 며느리로 데려 가신다는데 내가 어찌 아니 보내겠소? 그래서 보낸 것이지 다른 뜻이 있을 리가 없소.”

여포는 왕윤의 차근차근 대답하는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제가 소문만 듣고 일시 착각을 했습니다. 오늘 사도께 무뢰한 죄는 종아리를 맞아도 쌉니다. 내일 가시를 짊어지고 와서 대죄를 드리겠습니다.”

여포는 머리를 조아려 공손히 사죄를 했다. 그러자 왕윤이 말했다. “우리 딸의 신행에 보낼 세간도 많으니 다음 편에 장군부로 보내오리다.”

그 말에 여포는 은근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여포는 왕윤의 집에서 승상부로 돌아온 뒤 행여나 동탁이 신방을 치르라는 분부가 있을까 싶어 승상부중을 떠나지 않고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기다려도 소식이 아득했다. 여포는 고스란히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았다. 지금 승상부 내실에 있을 초선의 아름다운 얼굴 모습이 눈에 삼삼 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자는지, 누웠는지, 머리를 빗고 분세수를 하고 칠보단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지척이 천리라더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었다.

왕 사도의 말에 의하면 동 태사는 간밤에 일진이 좋으니 자기 아들과 초선이를 신방을 치러주겠다, 하고 데려왔다 하는데 이같이 감감하게 밤새도록 소식이 없었다. 초선이가 지금 방은 어느 방을 쓰고 있는가? 동 태사의 침실 옆인가? 모를 일이었다. 초선이가 이제 와서 지금 확실히 내실에 있기는 있는데 문둥이 아이들 고추 떼어 먹듯 동탁은 시치미를 떼고 아무 소식도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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