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미북 정상이 6월의 짙은 신록 아래서 정전협상 66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역사적인 만남은 한민족은 물론 전 세계인에까지 열광적인 전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처음 밝는 첫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 대통령,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환영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대사건이었다.

이 역사적인 미북 정상의 만남을 보면서 28년 전이나 지난 옛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북한 취재경험이 있는 필자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판문점 사진이나 관련 뉴스를 접하면 예전의 추억이 많이 생각났는데, 이번에는 미북 정상의 뜨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생생하게 과거의 일이 기억이 났다.

1991년 봄이었다. 당시 남북한은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을 판문점 남측과 북측지역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했다. 회담이 남측 자유의 집에서 열리면 그 다음엔 북측 통일각에서 열렸다. 북측에서 회담이 열리면 우리측 기자들은 북측으로 넘어가고 중간 중간 회담 기사 송고를 위해 남측으로 다시 넘어와야했다. 남북공동경비구역에서 유일한 통로가 됐던 곳은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바로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났던 장소였고,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극적인 만남을 이루었던 장소였다.

낮은 콘크리트 턱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긴장감이 고조된 무장한 북한군과 우리 군을 보면서 자유스럽게 군사분계선을 왔다갔다 했으니 그럴 만도했다. 흥분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의 풀기사를 커버하면서도 남북교류가 진전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UN과 북한 측 공동경비구역으로 정해진 판문점은 원래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전만해도 남북한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으로 갈라져 있지않고 공동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도끼만행사건이후 콘크리트 턱으로 군사분계선을 가른 뒤 남북대표단이 왕래했을 때만 제한적으로 통과할 수 있게 했다. 남북공동경비구역은 전후좌우 경계간 직선거리가 800m에 불과한 좁은 공간이지만 남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동안 남북한 교류는 하나의 계획이 다른 계획을 부수며 수십년간 제한적인 관계를 보여 왔다. 28년 전 첫 남북 단일팀 구성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남북선수단 공동입장, 동계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공동응원단 구성 등을 이루었으나 그때그때 정치적인 변수로 인해 큰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가 체육을 우선해 모든 것을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위협으로 남북한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작년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북한과 수차례 정상 회담이 열렸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 하노이 등에서 개최됐고, 남북한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모색하려고 2032년 하계올림픽을 남북이 함께 유치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아직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체육에서만큼은 하계올림픽이라는 큰 진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오랜 남북교류역사가 그랬듯이 하계올림픽 남북한 공동 유치도 정치라는 돌발 변수에 의해 언제든지 흔들릴 개연성이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사분계선 만남을 보면서 경색 국면이던 비핵화 협상이 잘 풀려나가며 남북한 스포츠 교류에 본격적인 훈훈한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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