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최근 한 종편 방송에서 박종환 감독(81)과 정정용 감독(50)이 출연한 것을 봤다.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FIFA 남자대회 사상 첫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20세 이하 대표팀 쾌거를 놓고 개인적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해설자로, 정정용 감독은 현역 대표팀 감독으로 출연했다. 시대가 낳은 축구 영웅으로서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적을 올렸던 두 사람은 개인적 스타일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종환 감독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카리스마 넘친 리더십, 권위와 소신으로 선수들을 몰아치며 강력한 팀을 만드는 게 그의 전매특허였다. 직선적인 성격으로 선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천둥 같은 질책으로 혼쭐을 내는 무서운 지도자였다.

박종환 감독은 TV에서 “정정용 감독을 이번 대회를 통해 알게 됐다. 침착하며 선수들을 자상하게 이끄는 지도자인 것 같다. 선수들이 강한 외국팀을 만나면 두려워할 수도 있는데 선수들이 자신감 있게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보면 지도자가 평상시 선수들을 어떻게 훈련시켰는가를 알 수 있다”며 그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박종환 감독에게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는 열화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했던 대회였다. 그는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프로를 경험한 청소년 선수가 아무도 없고, 국제 정보마저 아주 부족했다”며 “대회가 열렸던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가 고지대였던 것만 알았지, 멕시코 시티에서 70km 떨어진 툴르카는 해발 3700m가 넘었다. 고지대 적응이 필요해 선수들에게 마스크 훈련까지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4강 신화로 일약 최고의 지도자로 떠오른 박종환 감독은 1988년 이후 일화 천마 축구단 창단 감독으로 축구 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고 국내 최고령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화려한 명예 뒤에는 강한 채찍질로 선수들을 몰아친다는 ‘비정의 승부사’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공격적이고 다양한 전술로 많은 축구팬을 가진 한편으로 그의 권위적인 리더십에 반발, 선수들이 고의 태업을 벌였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어찌보면 박종환 감독과 같은 지도자는 그가 최전성기를 맞았던 1980~1980년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며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며 축구 지도자들도 성공을 위해 혼신을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36년만에 세계 4강을 넘어 준우승까지 이뤄내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낸 20세 이하 대표팀의 정정용 감독은 박종환 감독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 문화적인 환경도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정용 감독은 시대의 흐름에 딱 맞는 절제된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부드럽고 따뜻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다독이며 개성을 꽃피우게 하는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을 낮추고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는 ‘절제의 승부사’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이다.

박종환 감독이 불같은 지도자라면 정정용 감독은 물 같은 지도자이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개인적인 스타일도 다르지만 정작 그들이 성공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리더형을 추구해 영웅적인 지도자로 올라설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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