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 수영의 자존심 박태환(30)과 중국 수영 스타 쑨양(28). 둘은 세계 수영계에서 ‘이단아’로 통한다. 서양 선수들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서양 선수들을 물리치는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둘 이전까지만 해도 1970년대 마크 스피츠(미국), 1980년대 마하일 글로스(당시 서독), 2000년대 이언 소프(호주) 등 세계적인 서양 선수들이 독무대를 이뤘다. 하지만 박태환이 등장하면서 이 종목은 동서양 선수들이 겨루는 뜨거운 경연무대가 됐다.

박태환이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출전한 2007년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우승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박태환이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수영은 마침내 변방의 설움을 떨칠 수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기록을 갖고 있었지만 경험부족으로 실격탈락의 설움을 겪은 터에 3년간에 걸친 필사의 도전 끝에 나온 값진 결과였다. 서양 선수들은 박태환의 금메달에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지만 그의 실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1년 상하이 세계 수영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박태환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실격판정 번복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자유형 200m에서도 값진 은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수영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가 됐다. 박태환보다 2살 어린 쑨양은 박태환과 한때 이 종목에서 라이벌 대결을 벌이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쑨양은 지난 21일 한국에서 처음 열린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동안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드 해켓뿐이다. 그동안 쑨양은 이날 자유형 400m를 포함해 통산 세계선수권 금 10개, 올림픽 금 3개를 땄다. 2012 런던올림픽 자유형 1500m에서 쑨양이 세운 세계기록(14분31초02)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서양 선수의 높은 콧대를 납작하게 한 둘에 대한 견제와 감시망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둘러쳐져 있다.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은 끊임없는 약물복용 논란이다. 박태환과 쑨양은 주요 대회를 전후해 도핑 테스트의 정밀한 표적이 됐다. 어느 선수들보다 도핑검사를 많이 받았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전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인 네비도를 투약한 것으로 드러나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이 박탈됐고, 2년여간 국가대표 활동이 정지됐다. 쑨양도 박태환과 마찬가지로 약물 문제가 꼬리표로 따라 붙었다. 2014년 혈관 확장제 성분이 있는 금지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여 3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또 작년 9월 중국 자택에서 도핑 검사용 혈액이 담긴 유리병을 깨 도핑 방해 논란을 일으켰다. 동병상린이라고나 할까. 약물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둘은 광주 세계수영 선수권대회에서 오랜만에 라이벌 관계를 일시 접고 만났다. 쑨양은 사상 첫 4연패를 이룬 승리자로, 박태환은 컨디션 조절문제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홍보 대사로 수영장에서 얼굴을 마주 했다. 박태환은 쑨양이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은메달의 맥 호튼(호주)이 시상대 위에 올라가지 않고 있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혼자 지켜보았다. 미국, 유럽 선수들이 장악했던 세계 수영에 동양 선수도 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준 박태환과 쑨양을 보는 국제 수영계의 눈은 아직까지도 관대하지 않은 것 같다. 박태환의 쾌거를 계기로 광주 세계수영대회를 유치했지만 한국 수영은 그나마 ‘이단아’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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