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적장 황조를 유표에게 돌려보낸 손책은 아버지 손견의 시체를 넘겨받아 장례를 치르고 몸을 굽혀 전국의 선비와 영웅호걸을 맞아 들였다. 한편 동탁은 어린 손책이 나이가 어린 것을 안심하여 더욱 오만 방자해 호화별장을 짓고 미소년과 소녀를 뽑아 황금과 보옥으로 사치의 극을 이루었다.

동탁은 이처럼 미오 별장 공사를 극치하게 완성한 후에 장안으로 왕래하니 어느 때는 한 달에 한 번이요, 어느 때는 반 달에 한 번 꼴이었다. 동탁이 장안과 미오 사이를 들고 날 때마다 만조백관들은 장안 동편에 있는 황문 밖으로 나가 전송하고 맞이하기에 바빴다. 황문 밖에는 언제나 장막을 길가에 치고 만조백관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잔치가 베풀어졌다.

어느 날 동탁이 황문 밖으로 나가니 만조백관들은 동탁을 전송하며 전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마침 북평 땅에서 반란군이 항복해 귀순한 병사들이 수백명이 도착했다. 보고를 받은 동탁은 장수에게 명을 내렸다.

“항복한 반란군 병사들을 모조리 참형에 처하라!”

잔인한 동탁은 항복한 병사들의 처형 장면을 보면서 술을 마시자는 것이었다. 장수들은 동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망나니를 불러서 항졸 병사들을 처형하게 했다. 명을 받은 망나니들은 붉은 옷을 입고 칼춤을 추면서 무수한 병사들의 손을 끊고 발을 잘랐다. 구슬픈 비명소리가 산천을 흔들었다.

동탁은 껄껄거리며 웃다가 더 혹독한 형벌은 없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망나니들은 항졸들의 눈알을 뽑고 혀를 잘랐다. 자지러진 통성은 마치 만 마리 황소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차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만조백관들의 등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소름이 돋았다. 동탁이 갑자기 외쳤다.

“저 놈들을 한꺼번에 삶아 죽일 수는 없느냐?”

동탁의 한마디에 형리들은 잔치마당에 가마솥에 물을 끓여 놓고 항졸들을 끌어넣었다. 구슬픈 통곡소리가 하늘과 땅이 떠나가는 듯했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백관들은 술잔과 수저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동탁은 여전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희희낙락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백관들은 외면하고 귀를 막았다. 일어설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었다. 동탁의 잔인성은 도를 넘어섰다.

어느 날 동탁은 궁중 성대에서 백관을 크게 모아 놓고 술을 양편으로 부어 행주를 하여 두어 순배가 지났을 때 여포가 들어와 동탁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지 수군거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던 동탁은 빙긋이 웃었다.

“그 말이 참말이냐? 그렇다면 네가 친히 끌어내려 처치하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포는 연회석으로 올라가 사공 벼슬인 장온의 앞으로 다가가 멱살을 덥석 잡아 당 아래로 끌어내렸다. 장온은 갑작스러운 여포의 행동에 소리치며 부들부들 떨면서 당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만조백관들은 모두 다 실색을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뒤에 시종 하나가 홍반에 피가 주르르 흐르는 사람의 머리를 담아 동탁의 앞으로 받들어 들어왔다. 모두들 바라보니 다른 사람이 아닌 금방 여포에게 끌려 나간 사공 장온의 머리였다. 백관들은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해 벌벌 떨었다.

동탁은 소리 높여 껄껄 웃었다.

“여러분들은 놀라지 마시오. 장온이 원술과 결탁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밀서가 우리 아들 봉선한테로 들어왔기에 목을 벤 것이오. 여러분께서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조금도 놀라고 무서워할 것이 없소.”

그제야 백관들은 허리를 굽혀 알겠다는 대답만 했을 뿐 군소리 없이 흩어져 버렸다.

이날 사도 왕윤도 그 좌석에 참예했다가 그 광경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낮에 일어났던 무참한 광경을 가만히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아니하여 좌불안석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달은 밝았다. 왕윤은 지팡이를 끌고 후당으로 들어가 황장미 덩굴 옆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홀연 모란정 쪽에서 길게 한숨을 쉬다가 짧게 탄식하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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