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삼국지] 손견의 죽음 2
[다시 읽는 삼국지] 손견의 죽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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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윤 소설가

 

한당의 충고를 듣지 않고 양양성을 공격하던 손견은 적의 복병에게 석전을 맞아 뇌가 터져 죽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정보의 호위를 받으며 한수로 돌아온 손책은 뒤늦게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손책은 목 놓아 방성통곡을 하고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눈물을 뿌려 주인의 비명횡사를 조상했다. 손책은 통곡을 한 뒤에 눈물을 머금고 장수들에게 목멘 소리로 물었다. “아버님의 시체가 적진 속에 계시니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장수 황개가 나서며 말했다. “적장 황조를 산 채로 잡아서 지금 우리 진에 있습니다. 사신을 보내서 주공의 시체와 교환하자고 해 보지요.”

황개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군리(軍吏) 환해가 말했다. “제가 유표와 본래 친분이 있습니다. 사신으로 보내 주시면 가겠습니다.”

환해는 손책의 명을 받아 사신으로 양양 성으로 들어가 유표를 만났다. 그는 손책의 시체와 살아 있는 유표의 부하인 황조와 맞바꾸자는 제안에 유표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손문대의 시체는 내가 정중하게 입관까지 해서 두었으니 황조를 보내 주면 곧 관을 돌려보내겠소. 그리고 휴전을 한 후에 군대를 돌려서 다시는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하는 조건이오.”

환해는 일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유표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막 뜰로 내려서려 할 때 유표의 모사 괴량이 소리를 치며 나왔다. “아니 될 말입니다. 손견의 군사를 한 명이라도 그저 돌려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사신 환해의 목을 베십시오.”

아무리 적이라 하나 화친을 청하러 온 사신을 죽인다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유표가 묻자 괴량은 다시 말했다.

“지금 강동의 강적 손견은 죽었고 그의 아들은 모두 다 어립니다. 이러한 허약한 때를 타서 만약 시체를 돌려보내서 화친을 한다면 그들은 세력을 기르게 될 것입니다. 뒷날 형주의 우환덩이가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일리도 있으나 황조가 적진에 있으니 그를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차마 심복지인인 황조를 죽게 두어 불의의 짓을 할 수 없네.” 유표는 괴량의 조언을 듣지 아니하고 환해를 돌려보내서 손견의 시체와 황조를 맞바꾸기로 결정을 내렸다.

손책은 황조를 유표에게 돌려보내고 아버지 시신을 맞아 휴전을 한 뒤 강동으로 돌아간 후 아버지 장례를 곡아 언덕에 장사 지내고 강도에 주둔해 있으면서 몸을 굽혀 어진 선비들을 초빙해 대접하니 사방의 호걸들이 점점 강동으로 모여들었다.

한편 장안에 있던 동탁은 손견의 죽음을 전해 듣자 좌우의 시자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한 가지 근심을 이제는 덜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몇 살이나 되었느냐?”

“맏아들 손책이 겨우 열일곱 살이라 합니다.”

옆의 한 시자가 대답을 하자 동탁은 안심을 하는 표정이었다.

“열일곱 살이라? 그것 별 것 아니로구나.”

그 뒤부터 동탁은 더욱 교만해지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스스로 상보(尙父)가 되어 나가고 들 때는 참람하게 천자의 의장을 사용했다. 그는 아우 동민을 좌장군 호후에 봉하고 조카 동황은 시중을 삼아서 대궐 안 군사 금군을 통솔케 하여 동씨네 일문은 노유를 막론하고 모두 다 후를 봉했다.

동탁은 장안성 150리 허에 따로 미오라는 별장을 백성 25만명을 동원해 건축하니 성곽의 높이와 크기와 두께의 규모가 장안성을 능가했다. 성 안에는 궁실과 창고를 짓고 20년 먹을 양식을 차곡하게 쌓아 놓았다. 그곳에는 민간의 미소년과 미소녀 8백여명을 뽑아서 가족과 함께 살게 하니 여기에 쌓인 황금과 보옥이며 값진 비단과 맛있는 산해진미의 적여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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