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사도 왕윤의 계략대로 경국지색의 초선을 본 여포는 단번에 그녀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은근한 말로 초선을 자신의 첩으로 주겠다고 하자 여포는 황홀해 정신이 없었다. 밤이 이슥해졌다. 여포는 아쉽지만 좋은 날을 택일해 초선을 부중으로 보내주겠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에 장군을 우리 집에 재우고 싶지만 동 태사가 알면 의심을 할까 보아 유숙을 못시키니 미안하기 짝이 없소.”

“천만입니다. 다음날 자기로 하고 오늘은 그저 약속만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래그래, 좋아, 좋아, 역시 우리 사위가 제법이야.” 왕윤은 돌아가는 여포의 등을 다시 한 번 툭툭 쳐 주었다.

며칠이 지났다. 왕윤은 대궐 안 조당에서 태사 동탁을 만났다. 때마침 여포는 옆에 없었다. 왕윤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동탁에게 극진한 말로 인사를 했다.

“항상 태사를 모시고 저의 초사(草舍)에서 약주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지만 원래 집이 누추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왕윤은 원래 정직하고 성격이 강직한 구신(舊臣)이라 늘 어렵게 생각하던 터에 그가 자신을 집으로 청한다는 말을 듣자 동탁은 우선 기뻤다.

“사도께서 부르시기만 하면 언제든 추창(趨蹌)해 가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정 때 누추하지만 제 집으로 왕림해 주셨으면 합니다.”

“염려 마시오. 약속을 어기지 아니 하리다.”

동탁은 쾌하게 허락을 했다.

왕윤은 집으로 돌아가자 수륙진미의 만찬진수를 준비하고 대청에는 수 병풍을 둘러치고 황탄자를 깔아 논 후에 안팎으로 채색 휘장을 둘러막아 화려한 포진을 차렸다. 다음 날 오시가 되자 동탁은 과연 왕윤의 집을 찾았다.

왕윤은 조복을 갖춰 입고 대문 밖까지 나가서 동탁을 맞은 후에 대상으로 인도해 상좌에 앉혔다. 좌우 옆에는 무사들 백여명이 창과 칼을 들고 옹위했다.

왕윤이 뜰에 내려 동탁에게 재배를 올리니 그는 시자에게 분부를 내렸다.

“왕 사도를 부액해 내 옆에 앉게 하라.”

동탁의 시자는 왕윤을 부축해 대청에 오르게 한 뒤 동탁의 옆에 앉게 했다.

왕윤은 일부러 첨을 올렸다.

“태사의 성하신 덕은 높고 높아서 이윤과 주공(周公)도 따를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에 아첨이라고는 하지 않던 노재상 왕윤이 이같이 첨을 하니 동탁은 무한히 기뻤다.

동탁을 위해 시녀들의 거문고와 풍류 소리는 구름 밖에 자지러지고 산해진미 맛 좋은 음식은 미희들의 손으로 끊일 사이 없이 날라졌다.

시간이 차차 황혼으로 접어들고 동탁이 술기운이 거나하게 됐을 때 왕윤은 동탁을 후원 별당으로 청해 들였다. 다시 다담상이 나오고 아름다운 계집들은 다투어 술을 따랐다. 동탁은 호위하는 갑사들을 물리쳤다.

“너희들은 밖에서 대기하라.”

호위하는 무사들이 밖으로 물러가자 왕윤은 친히 금잔에 술을 가득 부어 동탁에게 권했다.

“노부가 젊어서부터 천문 공부를 해 제법 천문을 볼 줄 압니다. 간밤에 가만히 건상(乾象)을 보니 한(漢)의 기수가 이미 다해 버렸고 태사의 공덕은 천하에 떨쳤습니다. 마치 순이 요의 뒤를 계승하고 우가 순의 뒤를 이어받듯 태사께서는 한의 뒤를 계승할 것입니다. 이것은 천심과 인의에 부합되는 일입니다.”

동탁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어찌 감히 바라겠소. 과분한 말씀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덕 있는 이가 무도한 임금을 치고 덕 없는 사람이 덕 있는 사람한테 군왕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 과분하다 하십니까?”

동탁은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무한히 기쁜 모양이었다. “만약에 천명이 나한테 돌아온다면 사도는 당연히 원훈이 되리다.”

그 말에 왕윤은 몸을 굽혀 사례한 뒤에 시녀에게 화촉을 밝히라 하고 다시 술과 안주를 올리게 했다. 동탁이 다시 술잔을 비웠을 때 왕윤이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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