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의 잔인무도한 행동은 조정의 만조백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연회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간 사도 왕윤은 깊은 시름에 잠겼는데 우연히 가기(歌妓)로 있는 초선에게서 나라를 구할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바라보았다. 초선은 목숨을 내놓고라도 왕윤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어떤 일이든 하명만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초선의 눈은 서천에 뜬 장경성 별빛같이 아름답게 광채를 뿜었다. 왕윤은 한숨을 가만히 내쉬고 말을 계속했다.

“역적 동탁이 지금 곧 임금의 자리를 뺏으려 한다. 그러나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속수무책이다. 지금 동탁이란 자는 양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름은 여포라 하는 자다. 효용이 절륜해서 천하의 무적이다. 내가 살펴보니 동탁과 여포는 모두 다 호색하는 무리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연환계라는 계교를 써서 먼저 너를 여포한테로 시집을 보낸 후에 다시 동탁한테 바칠 테니 너는 중간에서 편의를 취해 저것들 부자를 이간시켜서 상극이 되게 하라. 그리 된다면 여포는 반드시 동탁을 죽이고 말 것이다. 천하의 대악이 한 번 제거되고 사직을 붙들어 강산을 세운다면 이것은 모두 너의 공이요, 힘이다. 네 뜻은 어떠하냐?”

왕윤의 말을 듣자 초선은 상긋이 흰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아까 만 번 죽사와도 사양치 않겠다고 아뢰었습니다. 속히 소녀를 그 자에게 보내주옵소서. 다음엔 소녀가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만약 일이 누설되면 나는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 극히 조심해라.”

초선은 다시 방긋 웃었다.

“대감께서는 과히 근심을 마시옵소서. 첩이 만약 대의를 저버린다면 만 번의 칼 아래 엎드려 죽사오리다.”

그 말에 왕윤은 눈물을 머금고 초선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음 날이었다. 왕윤은 장인을 불러서 순금으로 금관을 만들게 한 뒤 다시 가보로 전해 오는 야광주 두 개를 주어 금관에 박게 하니 화려함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왕윤은 금관을 바라보고 미소하며 점두한 뒤에 종자를 불렀다.

“너는 이 금관을 여포 장군에게 전하고 오너라.”

왕윤이 보낸 금관을 받은 여포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왕 사도께서 나를 이같이 사랑해 주시니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려라. 내일 내가 친히 댁으로 가서 사례를 드린다고 여쭈어라.”

왕윤은 여포가 온다는 종자의 말에 미리 만반진수를 차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튿날 여포가 당도하니 왕윤은 친히 문 앞까지 나가서 맞이해 후원 별당으로 인도한 뒤에 상좌에 앉게 했다. 여포는 허리를 굽혀 왕윤에게 쾌활한 목소리로 치사를 올렸다.

“여포는 승상부의 한 개 장수밖에 아니 되고, 사도께서는 조정의 대신이신데 소인을 경대하시니 황공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여포의 치사에 왕윤은 얼굴 가득 웃음빛을 띠고 대답했다.

“방금 천하에 별로 영웅이 없는 중에 다만 장군이 있을 뿐입니다. 왕윤은 결코 장군의 벼슬 지위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장군의 영용무쌍한 재질을 공경하는 바입니다.”

여포는 왕 사도의 치켜세우는 말에 크게 기뻤다. 천하의 영용은 과연 자기 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왕윤은 계속해서 동탁과 여포를 은근한 칭송으로 쏟아 놓았다. 잠시 뒤에 소반에 가득한 진수성찬을 올린 주안상이 나왔다. 왕윤은 모든 시자들을 물리치고 다만 시첩 두어 사람으로 술시중을 들게 했다.

술이 반쯤 거나했을 때 왕윤은 시녀에게 분부를 내렸다.

“아기씨 보고 좀 나오라고 일러라.”

조금 있으려니 푸른 옷을 입은 시녀 한 쌍이 절세가인인 아가씨를 모시고 나왔다. 여포가 눈을 흘깃 들어 바라보니 달보다도 훤하고 꽃보다도 어여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고개를 숙인 미인의 비단 치맛자락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곱게 움직이면서 훈훈한 향내음이 여포의 코를 스쳤다. 여포의 가슴은 뛰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설레었다.

여포는 눈을 잠시 감은 뒤 다시 고개를 들어 도둑질하듯 미인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경국미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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