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신흥(新興)무관학교’를 새롭게 떠올리다
[아침평론] ‘신흥(新興)무관학교’를 새롭게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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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 주말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갔다 귀국하는 길에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미국항공편을 이용했다. 중국 상하이를 거쳐 국내로 들어오는 관계로 항공료가 무척 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루하게 13시간을 꼬박 기내에서 보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국기였으면 한국영화 두세 편 정도 보면서 오면 무료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 점을 아쉬워하면서 혹시나 하고 영화 제목을 이리저리 찾던 중 조승우가 주연한 ‘명당’이란 한국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추석맞이 개봉작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고는 하나 무료한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명당에 관해서는 우리 생활주변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로 언제 들어도 흥미가 있다. 떠도는 말로 어느 유명 정치인은 조상님 묫자리를 명당자리로 이장해 일국의 통치자가 됐느니 풍문들이 있는 터에, 영화 내용에서도 명당(明堂)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이라 하니 영화를 보는데 흥미로웠다. 조선 순조 때 유명한 지관의 이야기를 통해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을 찾는 권력자들이 그 땅을 차지하느라 얽히고설킨 권력쟁탈전은 볼거리였다.

이 영화에서는 천하명당 자리로 충남 예산군 덕산에 자리한 남연군 이구의 묫자리로 상정하고 있다. 오래전 필자가 공직에 있을 때 예산군에 출장간 김에 명당자리 남연군의 묘를 본적이 있어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가 쉬웠다. 결과적으로 명당자리를 차지한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왕(고종)이 되고 2대에 걸쳐 왕위에 올랐으나 영화 속 지관이 말한 대로 그곳에 묫자리를 쓰면 2대 왕에 끝난다는 것도 설정된 스토리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내용으로 남연군 묫자리가 천하명당이라는 역학에 관한 일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영화였다.

필자는 ‘명당’을 보면서도 어떻게 끝날까 궁금했다. 역사적 사실대로 흥선대원군이 그 터를 차지했고, 영화 속 주인공 지관은 2대 왕으로 왕조가 끝남에 탄식하면서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으로 나라와 백성이 잘 되기 바라는 기대로 풍수일을 계속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 전개와 무관한 영화적 상상력으로 돋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뒤에도 풍수를 보는 지관에게 손님이 찾아든다.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뜻있는 애국지사 둘이 지관을 찾아와서 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 터를 찾는다는 것이다. 지관은 국내에는 없고 ‘서간도’에 있다고 했고, 학교 이름은 ‘신흥(新興)’이라고 귀뜸해 준다. 그 대목이 남만주에 있었던 신흥무관학교와 무관하지 않는데 이 역시 뛰어난 영화적 상상력이라 할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치하이던 1910년, 국내에서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이 어렵게 되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 등지로 활동무대를 옮기던 당시에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1911년 길림성 유하현에서 개교하여 1920년까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군사학교의 성격을 가진 이 학교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의용대, 대한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하는 등 무장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했으니 이 점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명당’ 영화 한편을 흥미롭게 보고 난 뒤 느낌이 묘하다. 영화 마지막 엔딩부문에서 나오는 신흥무관학교의 제목을 마치 지관이 지어준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데 실은 ‘신흥’이란 학교 이름은 당시 국내에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의 ‘신’자와 부흥을 의미하는 ‘흥’자를 합쳐 만든 것이다. 어쨌거나 신흥무관학교는 김좌진 장군, 홍범도 장군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 학교로 육군사관학교의 전신과도 같다.

올해 2월에 거행된 육사 졸업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뿌리도 100여년 전 ‘신흥무관학교’에 이른다”고 강조했으니 일제강점기 때 우리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던 학교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신흥무관학교’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름 아닌 뮤지컬을 통해서다. 지난해 9월에 첫 공연을 보인 ‘신흥무관학교’는 대한민국 육군의 뿌리가 된 이 학교를 배경으로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평범한 청년들의 치열한 삶을 그린 군(軍) 뮤지컬이다.

군 뮤지컬은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거나 무거운 분위기로 흥행 면에서 성공하지 못하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 초연 이후 전국 12개 도시에서 65회나 공연돼 총 5만2천여명의 관객들이 몰려들었으니 역대 군 뮤지컬 중 최다 지역, 최다 회차 공연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과 건국 100년 기념으로 앵콜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아직도 정치권·역사학자들 간에는 건국절에 대한 시시비비로 해묵은 논쟁을 일삼고 있지만 우연찮게 귀국길 기내영화에서 ‘명당’ 영화를 재밌게 보고, 그 영화 말미에서 뜻밖에도 항일 독립군의 산실 신흥무관학교까지 연상했음은 또한 소득이 아닌가. 영화적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에 겹쳐진 매력적인 신흥(新興)이 테마였던 명당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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