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미세먼지 문제 대책 등을 논의한 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미세먼지 대책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의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청와대 예방 직후 반 전 총장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야당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수용하고 중책을 맡겨준 대통령의 뜻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먼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반기문 전 총장에게 위원장직을 맡기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을 했고 이에 문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일이 성사된 것이다. 이날 반 전 총장이 야당 대표의 제안을 수락한 문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이런 이유이다. 최소한 미세먼지 대책만큼은 여야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거듭 “정치권은 미세먼지 문제를 정치적 이해득실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미세먼지는 이념도 정파도 가리지 않고 국경도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이런 의지는 우리 정치권의 현 상황과 맞물려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들이 온통 정치권으로 옮겨와 여야 간 무한정쟁으로 변질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학의 전 차관과 영화배우 고 장자연씨 등 민감한 범죄사건까지 정치권으로 불이 번져 연일 공방전이 반복되고 있다. 자칫 미세먼지 대책까지 이런 식으로 변질되거나 쟁쟁의 대상이 된다면 국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청와대 춘추관까지 찾아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배경이라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대부분의 광역단체장들도 미세먼지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공약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곳은 별로 없다. 물론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런 사이에 최근의 미세먼지 수준은 거의 ‘재앙’에 가깝도록 초미의 국민적 관심이 됐다. 어쩌면 차기 총선과 대선을 관통할 주요 ‘아젠다’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정쟁의 대상이 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반 전 총장이 첫날부터 거듭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이념적, 정파적 접근을 차단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 전 총장의 호소대로 미세먼지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 여야 정치권 모두 미세먼지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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