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사라지지 않은 비하 ‘조센징’
[이재준 문화칼럼] 사라지지 않은 비하 ‘조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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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업신여길 때 ‘조센징’이라고 한다. 본래 조선인(朝鮮人)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비하하는 욕으로 굳어졌다. 지금 일본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혐한 시위가 다시 일어나 친한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의거는 일본 학생들의 조선인 학생 멸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중학생 하나가 ‘조센징은 야만스럽다’라고 내뱉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돼 광주학생들과 일본인 학생 간의 집단 싸움은 전국의 반일학생 운동으로 번졌다. 이로부터 39년 후인 1968년 2월 20일.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일본인 인질 사건이 터진다. 이 사건도 ‘조센징’이 발단이었다.

야쿠자에 들어간 재일동포 청년 김희로는 두목으로부터 ‘조센징, 더러운 돼지새끼’라는 소리를 듣자 폭발했다. 2명을 살해한 김희로는 ‘고노쿠소야로!(버러지 같은 인간들아)’라고 외쳤다. 멸시에 대한 처절한 분노의 절규였다. 김희로는 45km 떨어진 후지노미 여관에서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88시간이나 경찰과 대치했다. 이 사건은 세계 언론에 실황이 중계됐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의 차별 실상이 낱낱이 공개됐다. 시즈오카에서 태어난 김희로는 소학교 3학년 때부터 일본인들에게 멸시를 당했다. ‘쭈글쭈글한 내 도시락을 보고 일본 아이들이 놀려 주먹다짐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다짜고짜 슬리퍼로 나를 마구 때렸다’고 폭로했다.  

김희로가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 박득숙 여사는 아들에게 옥중편지를 보낸다.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깨끗이 자결하라.’ 이는 너무나 유명한 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의 눈물겨운 옥중편지를 연상시킨다. 

무기징역 형이 확정된 김희로는 31년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를 석방시킨 것은 재일동포들과 한국인들의 석방운동 때문이었다. 모범수로도 감형을 받은 김희로는 1999년 풀려나 한국에 비밀리 귀국했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나는 영웅도 애국지사도 아니다. 이유 없이 차별하고 괴롭힌 못된 일본인과 공권력에 반항한 죄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뼈 있는 말을 덧붙였다. ‘나라가 있어야 민족이 영원하다는 걸 이국땅 형무소에서 절실히 느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김희로처럼 차별 대우를 받는 동포들은 없는지. 혐한 시위를 보면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고대 일본(倭)은 한반도로부터 문화를 받은 왜소한 섬나라였다. 천왕가도 백제 왕족의 피를 가장 많이 받았다. 왜국이 가장 선망한 나라는 구다라(백제)였으며 부여 땅에서 생산된 물건을 제일 갖고 싶어 했다. 

임진전쟁과 일제 36년 강압으로 각종 만행을 저지른 것은 배은망덕이며 사죄해야 할 역사다. 한말 낭인들을 시켜 국모인 민비를 산채로 불태워 살해한 역사를 돌아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며칠 전 서울 명동에서 2019 영암왕인문화축제를 홍보하는 ‘왕인박사 일본가오 퍼레이드’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인들에게 한자를 전해준 왕인박사의 고사는 일본서기에 기록됐다. 일본학자들은 이 같은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인들에게 고맙고 고마운 나라다. 

일본의 혐한 시위와 조센징이라는 비칭은 사라져야 한다. 한국에 대한 비하의식이 살아있는 한 양국의 갈등은 해소 되지 않는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후에 미래에 대한 논의와 협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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