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주52시간 근무제’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기업의 업무 시간을 일률적으로 주52시간 이내로 제한한다. 이를 위반한 고용주에 대해선 규모나 위반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형사 처벌한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도 일과 삶의 조화와 행복 추구권이란 측면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조항이 많다. 시간에 비례해 생산해내는 단순 노동은 엄격히 적용받지만 근로자의 능력에 따라 성과에 큰 차이를 보이는 신기술 연구개발직과 정보기술(IT)업, 엔지니어,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은 예외다.

일본의 경우 법정 근로시간이 주40시간으로 우리와 같고, 연장근로 상한도 주당 11.3시간으로 12시간인 우리나라보다 짧다. 그러나 노사협정에 따라 특별연장근로를 연간 360시간(1개월 100시간 이내)까지 허용하고 있다. 연장근로 규제 예외 대상으로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R&D)직’을 명시하고 있다. 오는 4월부터는 전체 근로자의 1.4%인 연 1075만엔 이상 고소득자나 전문직 종사자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미국의 경우 공정근로기준법에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무에 대해 시간당 50%의 할증(캘리포니아의 경우 100% 할증) 임금을 지급하면 근로시간의 제약은 없다. 적용 대상 제외 근로 유형도 관리직이나 전문가적 역량이 필요한 분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직종 등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할 경우 고용주를 형사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급여를 더 많이 지급하도록 해 기업과 근로자 모두 상생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한국은 의사·간호사 등 보건업과 노선버스업을 제외한 운송업만 규제 예외 대상으로 한정하고 그 외에는 없이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별연장근로는 자연재해나 재난에만 한정해서 고용부 장관 인가나 근로자 동의에 의한 인가연장근로만 가능하다. 기업이 긴박한 상황에 봉착해도 노사합의에 의한 추가 근무도 못한다.

주52시간 규제의 획일적 적용으로 ICT강국이 무너지고 있다. SW, 게임 등 ICT업계에는 장기적으로 큰 악영향을 미치고 중국, 인도 등 경쟁국에 뒤처질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일부 업계에서는 개발을 포기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획일적인 주52시간 근무제는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을 멈추게 할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 ICT기업들은 밤낮으로 일해 기술개발을 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우리나라의 수출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정보통신강국을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지금 AI, 빅데이터, 5G 등 핵심기술과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중요 기술 중 거의 모든 부문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 2~5년 정도씩 뒤지고 있고 심지어 중국에도 이미 여러 분야에서 추월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야의 연구개발(R&D)은 시간에 제약을 두고는 해낼 수 없다.

전통제조업 같은 시간 투입과 생산량이 비례하는 일자리에 대해서는 주52시간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되, 산업별 특성을 고려해 창의성이 중요한 ICT 업종 등과 고임금의 고급 일자리에 대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예외 조항을 열어둬야 한다. 또한 최소한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해본 SW, 게임 등 ICT업계에서 가장 요구하고 있는 주52시간 근무제의 평균 근무시간 산정기간을 ‘현재 1개월인 산정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연장은 시급히 해결해 줘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더 일해서 더 벌고 싶은’ 근로자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것이다. 초과근로가 불가능한 현행법상 추가 수입을 위해서는 다른 일자리를 더 구해야 한다. 현실은 더 힘든 상황으로 근로자를 내몰고 있다는 점도 정부, 정치권과 노동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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