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19.1.23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19.1.23

양 전 대법원장 총 47개 혐의

박병대·고영한도 불구속 기소

논란 이어지며 ‘기록’ 쏟아져

법원 내부 갈등 봉합 ‘과제’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관련 의혹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한 데 이어 11일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혐의로 기소되는 건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이다. 사상 초유의 일인 만큼 사건 과정에서 남긴 것과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다. 이로써 양 전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퇴임한 지 1년 5개월 만에 형사사건 피고인으로 본인이 평생을 바쳤던 법정에 서게 됐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두 사람은 모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며 사법농단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두 차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특정 법관을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혐의가 추가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엔 각종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에 개입한 재판거래 혐의 등 47개 범죄 사실이 담겼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가 포함됐다.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 (출처: 천지일보DB)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 (출처: 천지일보DB)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임 전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 반한법적 구상을 직접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받고 승인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옛 사법부 지도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형사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엔 문모 전 부산고법 판사 비위 의혹 축소·은폐,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정보 불법수집, 대한변호사협회 압박,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3억 5000만원 비자금 조성 등 혐의도 담겼다.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2017년부터 시작된 사법농단 논란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 되게 됐다. 사법부의 신뢰를 뿌리 채 흔드는 초유의 사건답게 많은 일들을 남겼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양 전 대법원장이 KTX 여승무원 복직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콜텍 해고노동자 사건 등 재판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알려지면서 사건 당사자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에 지난해 5월 29일 KTX 해고승무원들은 대법원 대법정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일반인이 대법원 대법정을 무단 점거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법부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박·고 전 대법관도 전직 대법관으로서는 처음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검찰의 구속영장을 청구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도 받았는데 이 역시 사법부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행보는 모든 게 최초며 처음이었다. 주택에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 신청, 검찰 소환, 출석을 앞두고 ‘친정’인 법원 앞에서 벌인 대국민성명, 전직 대법원장 최초의 구속심사와 구치소 수감까지 사법부의 새로운 치욕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7

◆법원 내부 갈등 봉합에 ‘김명수 리더십’ 발휘될까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 법원은 내부의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사법부를 휘저어놓은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만큼 이제 논란을 털어내고 법원 내부를 추스를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진 원인은 2017년 양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행정처가 특정 성향 판사들을 탄압했다는 내용과 관련, 자체 진상조사 과정에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불거졌다.

일선 판사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6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처음 열렸고,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9월 퇴임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업무를 시작하면서 조사가 본격화됐다.

애초 법관들을 편 가르기 하면서 논란이 시작됐고, 특별조사단과 검찰 수사를 거치며 법원 내부 갈등은 쌓일 대로 쌓였다. 전국대표법관회의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탄핵 가능성을 언급하자, 그 대표성을 의심하는 주장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양 전 원장이 받은 혐의는 총 47개에 달하는데, 많은 법관들이 개별 혐의마다 실무 등을 담당하며 다양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전국대표법관회의에서 탄핵 대상으로 언급된 판사들은 검찰 조사에 따라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남아있고, 대법원 차원에서도 징계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사법농단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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