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정치는 흥정이 기본이다. 여기서 ‘흥정’이라 함은 ‘물건을 사고 팖’이나 또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하여 품질이나 가격 따위를 의논함’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당사자들에게 서로가 득이 되도록 상대편에게 알려주는 제3자의 역할’로서의 흥정이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 했듯이 좋은 일은 도와주고 궂은일은 말리라는 뜻인데, 지금 국회에서 여여가 현안을 두고 서로의 속셈이 달라 갈라질 때 흥정의 역할이 중요한바 그 일을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화의 달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도맡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야대표나 원내대표들을 초치해 주요 현안을 타협하게 하면서, 여야의 첨예한 사안이 발생될 때마다 문 의장이 나서서 수고해왔던 일들만 해도 여러 건이다. 지난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받아들이라며 단식농성을 할 때에도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서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나 설득하는 등으로 단식투쟁 문제를 해결해냈다. 그러면서 국회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여야 대표 간 초월회 모임을 만들어 그 회동을 통해 근본적 대책에 합의하는 등 난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문희상 의장은 거구인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학자풍 모습이 비쳐진다. 언행에서도 사자성어나 고문을 인용해 국회행사나 정치인들에게 품격 있게 말한다. 20대 후반기 국회 수장 취임식에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내세웠다. 요약하면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이니 개인생활에서는 당연하고 정치 관계에서도 믿음과 의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설파한 것이다. 

그리고 무신불립의 원칙하에 의정은 여야의 협치가 필요한 것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을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것은 여당은 야당의 입장에서, 또 야당은 여당의 상황을 새겨서 의정활동에 임해나가는 것이 국회 본연의 일이자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임을 일깨웠던 것이다. 그 후 취임 1주일 동안 문 의장이 사자성어나 고전을 입에 올린 것이 모두 13개가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을 했다. 그로보아 문희상 의장에게는 한학자와 서예가로서의 모습이 비쳐진다는 것인데,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다.

문 의장은 국회의원 서예 모임인 ‘대한민국국회서도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34년 전인 1985년에 만들어진 국회내 취미클럽 서도회에 관심을 가지면서 2011년 4월에 서예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8년이란 경력을 쌓았고, 서도회 회장으로서도 열성적이다. 그동안 배우고 익혀 직접 쓴 글씨를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로 건넨 적도 많고, 국회의사당 지하 통로에 문 의장의 글씨가 걸려 있을 정도로 문 의장의 서예 사랑은 대단하다. 그러니 묵향과 같은 깊은 사색과 행동들이 문희상 의장에게서 중후하게 묻어나는 것이다. 서도회에는 문 의장뿐만 아니라 정세균 전 의장, 이주영·주승용 부의장, 조경태 의원 등 서예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의원들이 바쁜 의정활동에서 서도실을 찾아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 수양을 한다고 하니 좋은 일이다. 

필자는 새해 들어 의원회관  635-1호에 자리하고 있는 국회의원 서도실을 찾았다. 국회의원들이 의정 도중에도 여가선용과 고문을 배우고 서도(書道)를 행하기 위해 마련된 서도실 책임을 맡고 있는 서예대가 초당 이무호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곳 공간에 들어서자 전시된 서예대가의 작품에서 전해오는 분위기와 묵향 냄새로 분위기가 신선하기까지 했는데 많은 날 정쟁으로 지새우는 국회의원들의 의정 산실 의원회관에 서도실이 있다는 것은 특이하고 놀랄 일이다. 서도실을 찾는 중국대사나 대만대표부 관계자들이 한국국회에 서도실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동방예의지국으로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니 국위선양이 아니던가.  

1년 전 고희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초당 이무호 선생은 60여년간 필묵과 벗 삼은 서예계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는 지난세월 동안 중국 갑골문자를 비롯해 청동기시대 금문, 왕희지를 비롯해 육조 진, 당 해서 등 300여 종류의 다양한 법첩을 심도있게 연구한 전통서예는 글씨인 듯 그림인 듯 구분이 묘연하고 심오하다. 그가 독창적으로 창안해낸 ‘태극서법’은 중국 서예대가들도 찬탄해마지 않는 것이니 초당 선생의 명예가 이와 같다.

고희를 넘겨 매일 의원회관으로 출근해 은은히 묵향 속에서 의원들의 서예지도와 함께 헌정회 서예지도 교수직을 묵묵히 수행하는 초당 선생, 국회서도실장을 맡아 한국서예 세계화에 앞장서며 독립지사 추모작품을 제작해 외국에 홍보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심신수양을 위해 서예로 도움 주는 세계적 거장이 서도실을 찾는 의원이나 손님들에게 차를 직접 빚어내는 등 1인 2역의 잡일까지 하다니, 서도실에 보조자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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