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미발굴 애국지사 찾아 기리는 일 시급하다
[아침평론] 미발굴 애국지사 찾아 기리는 일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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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1운동은 일제강점기이던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독립운동이다. 정부에서는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해부터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100주년위원회)’를 구성하고 3대 분야 12대 전략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바, 핵심 사업은 독립운동의 과거사를 온 국민이 기억하고 또한 이를 기념하는 일이다.

당시 일제강점기에 일신의 안위를 위해 활개치던 친일파들이 많지만 그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개인과 단체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한 애국지사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국내외에서 전개했던 갖가지 애국적인 일들에 대해 정확히 분석·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100주년위원회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역점을 둬야 한다. 애국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발굴해내고 수많은, 묻어진 애국자들의 자취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그에 합당한 선양을 하는 것이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정부가 우선시해야 할 점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가사로 시작되는 광복절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고, 광복의 기쁨이 어떠했는지 새삼스럽게 들먹일 필요는 없다. 익히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잘 알 것이다. 그 당시를 생생히 경험했던 분들이 세상을 떠나 구전(口傳)되는 것은 어렵다 해도 역사교과서 기록이나 정부의 여러 가지 홍보 활동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민족이 겪었던 혼란과 고통들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박완서(1931∼2011) 선생의 소설 ‘오만과 몽상’에서도 일제강점기 이후 친일파나 애국지사의 후손이 겪는 영욕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친일파 후손들은 잘사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독립운동가 조상이 애국활동하는 동안 후손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등 환경이 열악했고, 그래서 친일파 후손은 장관 등 정부고위직에 오르는데 애국지사 후손은 중앙청 수위 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소설 내용의 요체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서훈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좋은 일이다. 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애국활동을 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미발굴 애국지사를 찾는 데 더한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도 많은 미발굴 애국지사 후손들은 고통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고 희생당한 애국자들의 활동이 인정받지 못하고, 후손들이 그 인정을 위해 숱한 자료를 찾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하고 정부를 상대로 민원을 제출해도 장벽이 높다면 좋은 나라, 좋은 세상은 분명 아닌 것이다.

필자는 10여년 전에 미발굴 독립유공자 후손인 정병기씨가 증조부의 애국활동을 증명하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후 얼마 전 같은 내용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정씨가 증조부의 공적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국가보훈처의 공훈 심사 높은 담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군자금확보를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당시 악명이 높던 서울마포의 경성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옥사한 증조부의 공적에 대해 지난 41년간 수십 차례 심사 신청하고 탄원했지만 통과되지 못해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후손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조상의 살아생전 업적을, 그것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활동을 증명시키는 일이다. 여러 가지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오랜 세월동안 서훈은커녕 따돌림 받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2017년 서울 서대문역사관 행사장에서 개최된 3.1절 행사장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 손 편지를 전달하는 등 증조부 명예 찾기에 노력했으나 국가보훈처의 구태와 관행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민원을 제기해도 ‘중복민원’이란 구실로 거부한다는 것이니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는 피눈물 나는 사연이 아닌가.  

미발굴 독립운동가의 일부 자손들은 자료 증명이 쉽지 않은 것은 문서보관상 문제도 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많은 친일파들이 정부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 행각을 지우기 위해 관련 자료를 폐기소각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바, 그러했을 개연성도 있다. 가짜 독립운동유공자를 막기 위해 입증이 제대로 돼야 하겠지만 보훈처에서는 미발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요구하는 선조의 애국활동에 대한 용역 등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후손들에게 관련 자료를 요구할 것인가. 또 고무줄 잣대의 보훈정책이 개선돼야 하겠다. 손혜원 의원의 부친은 광복 후 입북과 남파 후 지하공작, 보안법 위반 구류 등 좌익활동을 해 과거 6번이나 심사에 떨어졌지만 보훈처장 면담 후 쉽게 됐는데, 사례로 든 정병기씨와 같은 경우는 왜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애국자 발굴에도 든든한 배경과 권력이 있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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