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사건, 그 ‘평범성’을 경계한다
[스포츠 속으로]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사건, 그 ‘평범성’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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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체육계서 벌어진 불미스런 일을 놓고 국가수반과 ‘체육 대통령’까지 나섰다는 것은 보통 문제는 아니다. 개인의 일을 국가가 직접 나서 해결하려는 모양새라고 볼 수 있겠다. 아마도 이는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진 폭력 및 성폭력에 관한 일이라 전 국민적인 관심이 높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중대성이 너무 컸다고 판단해 고위층까지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언뜻 보면 빙상과 유도에서 터진 성폭력 사건은 당사자 간의 문제일 수 있다. 피해자는 선수 개인이고, 가해자도 코치 개인이다. 전형적인 ‘갑을의 권력관계’이다. 한국적인 스포츠가 불러온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동안 쉬쉬하며 숨겨왔던 개인적 치부가 이번에 크게 드러났던 만큼 그 파장이 컸던 것이다. 오로지 선수들은 결과만을 바라보며 치욕적인 수모를 감수하고 성폭력에까지 노출돼야 했고,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만을 채우며 힘을 휘두르는 데 정신이 팔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스포츠의 폭력 및 성폭력은 개인적인 먼저를 넘어서서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질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스포츠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승리지상주의, 비인간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권위적인 사제관계, 침묵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언제든 성폭력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과 같은 극한적인 사건은 항상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오래된 일이지만 지난 1980년대 필자가 기자로 활동했던 시절에도 성폭력 사건은 일어났고, 2000년대 들어서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덮어버리고 근본적인 개선책을 세우지 않았다. 성폭력이 얼마나 인권을 훼손하는 반인간적인, 반문명적인 행위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일상적인 개인 간의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끊이지 않고 발생했던 것이다.  

독일계 유태인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그의 대표적인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고발했다. 아렌트는 1961년 4월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의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신문사 특파원 자격으로 취재한 결과, 사람들이 아이히만을 ‘괴물’이라 불렀지만 실제로 그는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고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아이히만에게는 유대인을 학살해야겠다는 동기나 확신이 없었고 다만 상부에서 지시한 사항을 충실히 따랐다고 했는데, 이를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아이히만이 사유하고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여타 인간들도 그럴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다고 봤던 것이다.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 사건도 악이 평범한 일상에서 자행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봐야 한다. ‘먼저 앎이 권력’이라는 서툰 믿음을 가진 지도자를 배출하는 스포츠 생태계에선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가 있다. 이번 사건을 우려하는 것도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 및 성폭력의 평범성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가 지난 수십년간 고도성장을 하며 세계 강국으로 화려한 도약을 하는 이면에선 인권을 무시하는 폭력과 성폭력이 끊이지 않으며 많은 희생양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권을 존중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는 스포츠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스포츠인들 스스로 어두운 그늘을 걷어치우고 윤리와 도덕을 갖춘 성숙된 문화인으로서 깨어나려는 반성적 자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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