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카타르 축구가 한국축구에 던지는 교훈
[스포츠 속으로] 카타르 축구가 한국축구에 던지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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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24년 전인 1995년, 카타르를 처음 갔을 때 척박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오일대국으로 자리잡은 풍요로운 국가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아시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 취재차 방문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카타르의 모습은 온통 붉은 사막으로 뒤덮인 황량함 그 자체였다.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모래밭 천지였다. 하지만 바닷가에 자리잡은 카타르의 수도 도하는 인간이 잘 꾸민 도시였다. 많은 고층건물과 푸릇푸릇한 가로수가 줄을 이었고, 분수에서는 물이 쉴새없이 뿜어져 나왔다. 부자나라의 전형적인 도시 광경이었다.

당시 카타르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미 ‘도하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던 터였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1993년 10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2002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세계적으로 공식 선언한 날, 한국축구는 이곳에서 벌어진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에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날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물리치고 일본과 이라크전의 결과를 조바심을 갖고 기다렸다. 한국선수들은 북한에 크게 이기고도 풀이죽은 모습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오는데 고정운이 벤치의 갑작스런 반응에 껑충껑충 뛰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후반 인저리타임에 이라크의 자파르가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터뜨려 일본과 2-2로 비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2승2무1패로 동률을 기록했으나 골득실에서 앞서 일본을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 것은 카타르가 지난 2일 2019아시안컵 결승에서 예상을 깨고 일본을 3-1로 물리치고 사상 처음 대회 패권을 차지했던 탓이다. 카타르는 이 대회에서 7전 전승으로 쾌속질주를 벌이며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보였다. 카타르는 준준결승에서 아시아 최강이라 자신만만하던 한국을 꺾은 데 이어 일본마저 제압함으로써 아시아 축구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카타르는 한 번의 돌풍이 아닌, 아시아 축구의 판도를 뒤바꿀 만한 큰 변화를 예고케 하는 놀랄 만한 실력을 발휘했다. 카타르가 전력을 탈바꿈하게 된 것은 체계적인 대표팀 관리에 있었다. 3년 후 자국서 열릴 세계 축구 최고의 축제인 2022 FIFA월드컵을 앞두고 카타르는 수년 전부터 대표팀을 연령별로 조직력을 갖추며 장기적 플랜으로 팀을 만들었다. 펠릭스 산체스 현 카타르 A대표팀 감독은 2014년부터 카타르 U-19, U-20, U-23 대표팀을 차례로 이끌었다. 카타르는 예전 육상, 농구, 축구 등에서 풍부한 오일달러를 앞세워 중요 대회를 앞두고 아프리카의 우수 선수들을 일시적으로 귀화시켜 스포츠팀을 꾸려왔으나 2022 월드컵 유치를 한 뒤에는 축구를 중심으로 치밀한 관리전략으로 전환했다. 9골로 아시안컵 역대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며 득점왕에 오른 알모에즈 알리를 비롯해 주전 11명 전원이 고른 개인기와 팀 전술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육성했기 때문이었다.

총인구 260만명의 카타르의 우승은 스포츠 실력이나 국력이 국가의 인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우사인 볼트를 배출한 육상 강국 자메이카, 동계스포츠의 대국 노르웨이 등도 인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스포츠에 대한 의지와 투자를 아끼지 않아 스포츠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다 하더라도 스포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관리하지 않으면 결코 스포츠강국이 될 수 없다. 한국은 그동안 축구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하고 미래에 대한 예견이나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았는가 내심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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