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기해년 새해 아침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취임 후 최악의 지지율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실제 바닥민심은 더 나빠 보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향적인 신년사가 나오고 이에 따뜻하게 화답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지만 여론은 시큰둥하다. 한반도 비핵화도 좋고 남북관계 개선도 좋지만 정작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버겁다는 하소연과 절망이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더한 ‘과잉 해석’이라고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찬바람 부는 어느 골목 어귀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또는 이른 아침 일터의 문을 여는 평범한 이웃들의 눈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의 혹한기는 비난 날씨 탓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한 듯한 절체절명의 위기, 어쩌면 그런 징후를 삶과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촛불 이후 다시 양극단의 절망

지난 2일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현재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외환위기처럼 경제체제가 붕괴한다는 좁은 의미의 위기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도 외환위기 같은 사태는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말 그대로 금융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심각한 ‘실물위기’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실물위기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부 정책의 당위성을 애써 강변하는 김 위원장의 설명을 듣노라면 불안감이 더 커져버렸다. 최근의 위기 징후에 대한 ‘과소 해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한층 바빠졌다. 경제부처에 힘을 실어주고 관련 회의도 잦다. 신년사 화두도 경제였으며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신년회 행사를 개최한 것도 그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경제’에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경제 참모들이 대기업과 상공업계 인사들을 만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내주에는 중소기업인 10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정도 잡혀있다.

문제는 경제에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하나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 경제의 문제는 바로 ‘정치’에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경제에 있지만 그 경제의 해법을 찾아 설계하고 구체화하고 집행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에 경제정책에 더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정치의 문제’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다. 마땅히 국회와 정당이 돼야 함에도 말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정치공간’의 이러한 뒤틀림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야당인들 여당과 얘기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별 영양가가 없으니 기를 쓰며 청와대 핵심 인사를 국회로 불러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청와대가 정치의 중심에 서니 ‘적과 동지’의 전선이 뚜렷해진다. 협치의 힘보다 대치의 힘이 더 커지는 방식이다.

이러는 사이 최근 국회와 정당체제는 다시 네 편과 내 편, 즉 피아(彼我)로 대치되는 양당체제로 재구축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른미래당 소속이거나 과거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또 자유한국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탈주는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양 극단의 힘이 커지면서 ‘제3지대 정치세력’도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양극단으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무당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각종 지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정치의 비극이지만 뛰어넘기 어려운 한계임을 숨길 수 없다.

거대 양당체제의 비극은 단순히 정당체제의 한계라는 정치적 개념을 뛰어 넘는다. 그것은 다시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지역주의 정치의 원형이며, 보수와 진보라는 추상의 이념을 놓고 벌이는 낡은 이데올로기 정치의 본류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모든 갈등구조와 대결주의체제를 이루는 뿌리이다. 따라서 100여년 이상 특권을 누려온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들이 가장 좋아하는 안정적 지배구조이며 동시에 그들이 재구축한 특권체제의 산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익이나 공익, 협력이나 상생 같은 공동체의 가치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올바른 정책인들 제대로 통하겠는가. 개인은 개인대로, 집단은 집단대로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는 ‘정글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해 아침부터 두 거대 정당이 더 큰 몸집으로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다시 호남을 향한 메시지가 더 분명해지고 있다. 민주평화당의 눈빛이 위태로워 보인다. 자유한국당도 대구 경북을 향한 노골적인 구애가 한창이다. 아무리 전당대회 직전이라 하더라도 다시 구태로의 복귀에 다름 아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영남과 호남으로 귀결되는 한국 거대 양당체제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세련된 모습으로 재무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이런 정치판에서 상식과 양심, 정의와 도덕 같은 대의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마침 구속됐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만기 출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경제라고? 그 경제에 다시 묻는다. 넌 좌파냐, 우파냐? 아니면 영남이냐 호남이냐?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 아침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잘 모르긴 해도 지난 100년의 아침도 아마 그렇게 시작됐으리라. 슬프다기보다는 참담한 심정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