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임 홍남기 경제부총리로부터 첫 정례보고를 받았다. 예정된 한 시간을 넘겨 100분 동안 진행된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 중심의 경제부문 ‘원팀’을 강조했다. 1기 경제팀이었던 김동연-장하성 체제의 갈등과 혼선, 불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문 대통령도 최근의 경제상황을 ‘엄중하다’고 시인했다. 일각의 ‘근거 없는 낙관론’에 대해 쐐기를 박은 셈이다.

흔히들 ‘경제는 심리’라고 말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경제현실은 논리적 설명보다 직관적 판단이 더 우선한다. 아무리 경제관련 지표가 좋고 그 추이가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현장’을 통해 경제상황을 체감한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준은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 부정책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으며 정책결정이 시장에 제대로 된 효과를 미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은 차갑고 고달픈데 장밋빛 청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불신과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홍남기 원팀의 승부수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를 3대 기본정책으로 제시했다.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키워드를 적절하게 반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관건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그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소득이 뒷받침 되지 않은 경제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한계점에 이른 성장정책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혁신’보다 더 본질적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게다가 시장경제의 룰마저 ‘정글’처럼 변질되는 현실에서 공정경제보다 더 가치 있는 경제정책의 비전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시대를 제대로 읽어낸 ‘시대주도적 담론’의 의미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주도적 담론이라고 하더라도 경제현실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허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경제정책을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부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국민의 경제행위는 정부정책과는 거꾸로 갈 가능성도 높다. ‘정부의 실패’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비전이나 방향, 목표 등에서의 ‘오판’이나 ‘부실’보다는 정책에 대한 ‘불신’이 그 근본 원인이라는 의미이다.

실업률과 성장률 그리고 가계부채의 수준은 이제 거의 인내의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은 이대로 갈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중산층 이하의 경제상황은 더 절박해 보인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고 외쳐대는 일부 행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하루하루가 절박하고 고달프다. ‘양극화’라는 표현도 이미 오래된 얘기일 뿐이다. 양극화의 하위부를 이루는 다수 국민의 삶은 벌써부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삶이 더 힘들고 더 가난해지는 이 가공할만한 역설 앞에 국민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외치며 그 정책수단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같은 ‘진화된 정책’을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달랐다.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등은 그 혜택을 쏠쏠하게 누리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특히 영세사업자 등은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그 하위부의 삶이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격한 목소리와 행동은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더는 밀려날 수 없다는 외마디 ‘절규’인 셈이다.

이런 시점에서 드디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 절박한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원칙과 기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상황,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홍 부총리에 힘을 실어 줬다. ‘원팀’을 강조한 배경이라 하겠다. 그리고 홍 부총리도 “시장의 기대와 달랐던 정책은 현장 목소리를 담아 보완하겠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나서야 경제정책 비전이 지상의 높은 곳에서 생활경제 현장으로 내려올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담론의 변화를 현장의 변화로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그것이 정책집행의 관건이다. 여기서 막히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청와대 김수현 정책실장과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낡은 틀’도 깨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부터 혁신해야 한다. 사람을 바꾸지 않고서는 무슨 얘기를 해도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규제혁신과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의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경제활력의 주역은 민간이며 정부는 민간을 지원하는 서포터”라고 밝혔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동시에 반갑게 들리는 대목이다. 이는 1기 경제팀에서의 ‘소득주도성장’과는 전략적으로 차별성이 크다. 경제정책의 방향이 상당부분 수정되는 모습이다. 오판하거나 잘못 설계된 정책은 과감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정부의 신뢰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중심의 원팀만큼은 탁상머리의 신념이나 지표상의 비전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혁신성장의 승부수가 그 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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