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1990년대 초 미국의 한 작가가 기상 용어로 사용하다가 그 후 경제학 용어로 진화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초강력 폭풍)’. 개별적으로는 크게 위력적이지 않지만 몇 개의 위기가 합쳐질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기상이나 경제학 분야를 넘어서 각종 중대한 위기 징후를 거론할 때 여기저기서 자주 거론되는 말로 그다지 낯선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할 때 ‘퍼펙트 스톰’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 14일 ‘연동형 비례제’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할 때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반도 상공에는 세계경제의 패권전쟁 등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지금 위기로 가고 있으며 그 위기는 ‘퍼펙트 스톰’에 해당할 만큼 강력한 것이며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경고성 발언이었다.

물론 손학규 대표만이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위기’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정쟁’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구조와 고용시장의 한파 그리고 제조업 및 골목상권의 몰락은 한국 경제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자체가 소진되고 있으며 ‘미래형 먹거리 산업’에 대한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청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고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을들의 전쟁’은 더 노골화 되고 있다. 그럼에도 ‘제 밥그릇’만 챙기려는 각 부문의 집단적 탐욕과 투쟁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우리나라가 정말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정치가 문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위기 국면이 모두 문재인 정부의 탓은 아닐 것이다. 수십년간 축적된 위기구조가 본질이며 그럼에도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한 ‘정치의 실패’가 주범이다. 주변의 경쟁국들이 경제체질까지 바꿔가며 미래형 먹거리 산업에 집중하고 기술개발과 경제혁신에 집중할 때 우리는 청와대 권력이 앞장서 강바닥을 파헤치거나 대기업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내는 일을 벌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뼈아픈 통한의 시기였던 셈이다.

물론 그 주범들이 지금 감옥에 있으니 죄를 받고는 있지만 그 때 잃어버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기회비용’은 그 누구에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허무하게 세월만 보낸 것이며 그 지체된 비용은 이제 국민 몫으로 전가되고 말았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이요, 정치가 국민의 고혈을 짜낸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우리는 여러 개의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금 그 위기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문재인 정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국민이 많다. 과거 두 번의 정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도덕성과 개혁성을 담보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2년여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어쩌면 현실보다 과도한 기대를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성급했다면 그만큼 목이 말랐다는 뜻도 될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지율이 아니라 그 뜨거웠던 촛불이 벌써부터 꺼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감과 희망이 ‘배신감’과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권력의 ‘오만과 편견’이 배신감이라면 퍼펙트 스톰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절망의 표현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청와대 권력은 그들만의 성채에 갇혀서 그들의 정당함을 강변하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부가 청와대 권력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오늘도 바쁘다. 거기에 김태우 수사관과의 진실공방 논란까지 겹치면서 싸움판은 점입가경이다. 이런 시점에서 ‘블랙리스트’ 파문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럼에도 ‘유전자’ 운운하는 청와대의 반박은 그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권력을 보고 놀란 국민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청와대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집권당인 민주당의 무능과 독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부 때의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 같았던 집권당의 위상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전 정권에 비해 집권당으로서 제대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겉으로는 ‘개헌’이니 ‘연동형 비례제’니 또는 ‘협치’니 하면서 생색을 내지만 그 속내가 어떤지는 이미 국민은 알고 있다. 오죽했으면 ‘더불어 한국당’이라는 쓴소리까지 나왔겠는가. 게다가 ‘공항 갑질’ 논란에 휩싸인 김정호 의원의 언행과 그를 감싸는 민주당의 도덕성을 보노라면 이미 낙제점이다. 정권만 바뀌었을 뿐 이전의 새누리당과 ‘도긴개긴’에 다름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불안한 것은 아니 정말 두려운 것은 ‘퍼펙트 스톰’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이를 컨트롤해야 할 문재인 정부마저 무능과 독선으로 자칫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대목이다. 이는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에 더 초조하고 두려운 것이다. 한겨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들불’이 되길 바랐던 희망은 어디가고 지금은 그 촛불마저 하나씩 꺼져가는 모습을 보며 바깥의 맹추위가 벌써 가슴까지 파고드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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