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기초의회가 위태롭다
[정치평론] 기초의회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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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박종철 경북 예천군 의원이 지난달 말 미국과 캐나다 연수 과정에서 현지가이드를 폭행한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주민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직자로서 연수 중 폭행사건이 벌어져 현지 경찰의 조사까지 받았음에도 이들은 돈으로 무마하려 했다. 게다가 귀국해서는 폭행한 적 없다며 국민 앞에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쯤 되면 부끄러움을 넘어서 말 그대로 참담한 심경을 가눌 수 없다. 명색이 대한민국 ‘풀뿌리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초의회의 현역 의원들이 아니던가.

더 놀라운 것은 이번 폭행사건의 배경을 보노라면 정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현재 전해지는 소식을 보면 이들 예천군 의원들의 행태는 한마디로 막장 수준이다. 무소속 권도식 의원은 미국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여성 도우미’가 있는 술집을 안내해 달라고 가이드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호텔방에서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질러 일본인 투숙객들의 항의를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마사지숍을 가야 한다며 수차례 가이드를 압박하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음주가무가 이어졌다고 한다. 웬만한 시정잡배들도 연수 프로그램을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견제 없는 권력은 괴물이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전국의 수많은 기초의원들 가운데 일부의 일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탈의 유형만 다를 뿐 기초의회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문제를 제기하고 또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 이는 결국 구조적인 문제가 더 본질적이라 할 수 있다. 기초의원들의 개별적 능력이나 도덕성, 청렴성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의 핵심은 기초의회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환경 자체가 너무나 낙후돼 있다는 점이다.

먼저 기초의원의 ‘공천’은 대체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 선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측근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성이나 자질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잣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돈 있고 지역에서 행세 좀 하는 충성파들을 기초의회에 심어놓고 총선 때 그들을 조직책으로 동원하는 방식의 선거정치 시스템이 작동되는 한 기초의회 수준은 높아질 수가 없다. 또 그렇게 선출된 기초의원이 지역 주민인들 두려워하겠는가.

둘째, 기초의회는 대체로 ‘견제 시스템’이 취약하다. 전국 어딜 가더라도 두 거대 정당이 판을 좌우하고 있다. 서로 공동이익은 극대화 시키고 다퉈야 할 이익은 나눠먹는다. 이마저도 영남과 호남 등에서는 사실상 일당체제가 수두룩하다. 견제는커녕 여차하면 모두 형님, 동생이다. 이처럼 ‘견제 없는 권력’이 되다보니 그들 눈에 주민들이 들어올 이유가 없다. 말 그대로 ‘괴물’이 돼버린 셈이다. 다음 공천을 위해서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는 것이 관건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최대 관건은 공천을 지역구 국회의원 또는 당협위원장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지역 토호들의 천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당 및 시도당 차원의 공천 시스템을 가동하되 지역대표는 줄이고 대신 비례대표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정당 간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역구는 최소 3명 이상의 중선거제를 고착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동, 면 단위로 잘게 쪼개는 방식은 결국 거대 정당 싹쓸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나 더 보완할 것은 결국 광역의원을 포함해서 기초의원 등에 대한 윤리 문제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방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 못지않게 그 책임성과 윤리성도 강화시켜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윤리특위 설치를 의무화하고 외부인사 중심의 윤리심사자문위를 설치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국회윤리특위가 보여주듯이 결국 정쟁으로 흐르거나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리심사자문위도 결국 그 외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의장 직속으로 외부인사 중심의 ‘윤리심판원’을 독립적으로, 상시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예천군 의회 의원들의 ‘전원 사퇴’ 요구를 넘어 지방의회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분노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몇몇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 의원직 사퇴 압박은 유효해 보인다. 임기개시일로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없으니 아예 사퇴하라는 여론이다. 그러나 지방의회 폐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잉이다. 지방의회는 폐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할 민주정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예천군 의회 의원들의 일탈은 우리 지방자치 역사상 ‘최악의 윤리 참사’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말이 ‘연수’이지 국민의 세금으로 떠나는 ‘관광’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 마저도 술판에 호텔 내 고성에 심지어 성매수 시도까지 했다는 소식을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게다가 가이드에 대한 폭행, 이마저도 당초엔 거짓말을 하다가 영상이 공개되자 뒤늦게 사과하는 태도는 죄질이 나빠도 너무 나쁘다. 혹자는 묻는다. 과연 예천군 의회만 이런 수준일까.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대한민국 100년, 우리는 정말 뼈저리게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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