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자살미학(自殺美學)
[고전 속 정치이야기] 자살미학(自殺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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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조최(趙衰)는 진(晋)의 공자 중이(重耳)와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햐 주군을 문공으로 즉위시켰다. 그가 죽은 후 망명 도중에 얻은 아들 조순(趙盾)이 뒤를 이었다. 조순이 옹립한 영공은 폭군이었다. 영공은 잔소리가 심한 조순을 죽이려고 했다. 조순이 도망치다가 국경을 넘기 전에 사촌동생 조천이 영공을 죽였다. 조순이 죽고 아들 조삭(趙朔)이 뒤를 이었다. 조삭은 공주와 결혼했다. 영공의 총신 도안고(屠岸賈)는 경공이 즉위한 후 대사구(大司寇)로 승진하자 영공의 복수를 명분으로 조씨 일족을 멸하려고 했다. 한궐(韓厥)이 몰래 조삭에게 도망치라고 권했다. 조삭은 도망치지 않았다. 도안고가 조씨 일족을 멸했다. 임신 중이던 조삭의 아내 장희(庄姬)공주는 문객 정영(程嬰)의 도움을 받아 궁에 숨었다. 한궐이 정영에게 당부했다.

“딸을 낳으면 이름을 문(文), 아들을 낳으면 무(武)라고 지으시오. 무라면 복수할 것이오.”

도안고는 경공에게 공주를 죽여야 한다고 건의했다. 경공은 아들을 낳으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다고 대답했다. 공손저구(公孫杵臼)가 친구 정영에게 왜 조삭과 같이 죽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정영은 부인이 아들을 낳으면 기를 것이고, 딸을 낳으면 그때 죽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공주가 낳을 아이가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후 공주가 아들을 낳았다. 도안고가 궁중을 수색했다. 공주는 아기를 바짓가랑이 속에 넣고 조씨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울지 말라고 빌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공주가 딸을 낳았다는 거짓 소문을 들은 공손저구는 통곡했다. 정영은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들에게 무라는 글자가 적인 공주의 편지가 왔다. 공선저구가 정영에게 고아를 기르는 일과 죽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려우냐고 물었다. 정영은 죽는 것은 쉽지만 고아를 기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공손저구는 조씨로부터 더 우대를 받은 정영에게 어려운 일을 맡으라고 미루었다. 마침 정영의 아내도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은 정영의 아들을 화려한 강보에 싸서 수양산에 숨었다. 정영이 산에서 내려와 한궐에게 계획한 것을 털어놓았다. 한궐이 공주가 낳은 무를 빼돌리는 사이에 정영이 공손저구를 도안고에게 고발했다. 공손저구와 정영의 아이는 피살됐다. 정영은 조무를 데리고 멀리 도주했다.

15년이 지났다. 병에 걸린 경공이 점을 쳤더니 조씨의 선조인 고요(皐陶)의 후예가 순조롭지 못해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경공이 한궐을 불러서 물었다. 한궐은 조씨의 후예가 살아 있다고 고백했다. 경공과 한궐은 조씨의 고아 조무를 궁중에 숨기고 여러 장수들을 불렀다. 경공은 한궐을 앞세워 장수들에게 조무를 만나라고 협박했다. 장수들이 마지못해 지난날의 일을 사과하고 수락하자 경공은 조무와 정영을 불렀다. 정영과 조무는 도안고의 종족을 멸했다. 조무가 성인이 되자 정영은 조무와 여러 대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날 모두 순사했지만, 저는 조씨의 후손을 지키느라고 차마 죽지 못했습니다. 이제 주군께서 성인이 됐으니, 저는 지하로 가서 선군과 친구 공손저구를 만나고 싶습니다.”

조무가 흐느끼며 만류했지만 정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군! 공손저구는 제가 대사를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먼저 죽었습니다. 지금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그 친구는 제가 맡은 일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영은 기꺼이 자살하여 친구의 곁으로 갔다. 조무는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렸다. 조씨는 다시 번창했다. 이 정도이면 자살도 아름답다. 추운 겨울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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