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반간계(反間計)는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계략이다. 이 계략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역전승을 얻기 위한 계책과 모략이 된다. 양군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선을 잡아 적을 제압하거나,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성(軟性) 수법인 반간계를 강성(强性) 수법인 군사적 행동과 배합하면 생각보다 기이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간계를 군사적으로 사용한 범위는 매우 넓다. ‘병법원기(兵法圓機) 간(間)’에서는 간자(間者)를 적의 심복을 해치거나 적의 중요한 장수를 죽여서 적을 혼란하게 만드는 계모라고 했다. 반간계에는 생(生)과 사(死), 글, 그림과 노래, 뇌물, 관작, 고향, 친구와 여자, 은혜와 위협 등등의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혹은 간첩을 적진으로 파견하고, 혹은 적이 파견한 간첩을 잡아서 돈으로 매수하고, 혹은 자기를 위해 일을 하도록 만드는 장계취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종 목적인 적을 이기고 준비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정치투쟁에서 반간계는 정치가, 야심가, 음모꾼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그들은 정적 또는 적대적인 집단과의 첨예하고 격렬한 투쟁에서 가상을 만들어 적을 마비시키거나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반간계를 자주 사용했다. 그러므로 정치투쟁에서 반간계를 활용하면 이중간첩을 매수하거나 장계취계와 간첩활용을 교묘하게 사용해 상대를 속이거나 다른 곳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반간계를 실시한 후 적진과 적의 후방에서 갈등을 일으키면 적을 제압하는 절묘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간계는 정치투쟁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해왔으며, 다른 계략과 배합하기도 했다. 성공한 경우도 있고 실패한 경우도 있다. 중요한 점은 누구든지 간첩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오랜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는 기초를 다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간첩활용의 명인이었다. 그는 간첩을 활용해 오케하사마(桶狹間)전투에서는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을 교묘하게 다루었으며, 나가시노(長蓧)전투에서는 다께다 가쓰요리(武田勝賴)를 함정에 빠뜨렸다. 게다가 자기의 아내까지도 반간계에 활용했다. 노부나가의 아내 노히메(濃姬)는 미노의 강적 사이또 도산(齋藤道三)의 딸이었다.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아내이자 도산의 간첩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노부나가는 밤중에 바깥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수상하게 여긴 노히메가 물어보았더니 미노의 중신인 두 늙은 간신과 이네바성에서 불이 오르는 것을 신호로 군대를 일으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불이 오르는 것을 보러 갔다고 대답했다. 노히메의 보고를 받은 도산은 의심이 가는 두 중신을 살해했다. 노부나가는 간단하게 적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적진을 교란하기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는 평소에 적국의 어느 중신에게만 특별히 엄청난 선물을 보냈다.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선물을 받은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군도 역시 어딘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배신의 징후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내분이 벌어져 주군이 중신을 죽이거나, 중신이 주군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대상으로 반간계를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의 반간계에 걸린 조선조정이 이순신을 의심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흥미롭다. 이순신의 백의종군에는 히데요시의 반간계가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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