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산동성 치박시 임치구 영진장에서 남쪽으로 300미터 정도 떨어진 들판에 안영묘가 있다.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룬 관중묘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 그러나 회색의 담장에 둘러싸인 아늑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정문의 비석은 명의 만력시대에 세운 것으로 제상안평중지묘(齊相晏平仲之墓)라는 생동감 넘치는 글씨가 돋보인다. 안영은 자를 중(仲), 시호를 평(平)이라 했던 춘추시대 제의 유명한 정치가였다. 그는 영공, 장공, 경공 등 3명의 군주를 보필했다. 5척의 단신에 용모는 보잘 것 없었지만 지모가 뛰어났으며, 성품이 바르고 강직해 아부하지 않았다. 제의 일시적 중흥은 그의 소고 덕분이었다.

신장이 140㎝에 불과한 안영이 사신으로 오자 초왕은 성문을 닫고 작은 개구멍 하나를 뚫어서 들어오게 했다. 안영은 개나라에 왔다면 몰라도 초에 왔으므로 개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초왕은 제에 인물이 없어서 그대와 같은 사람을 보냈느냐고 비꼬았다. 안영은 태연하게 상대에 따라 사신을 고를 뿐이라고 대답했다. 초왕은 술자리에서 도둑질을 한 제나라 사람을 안영에게 보여주었다. 안영은 웃으며 귤나무를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고 대답했다.

유명한 오의 부차(夫差)와 안영의 대결도 재미있다. 부차는 안영이 오자 사람을 시켜 큰소리로 천자께서 당신을 만날 것이라고 외치게 했다. 부차의 야심을 알아차린 안영은 딴청을 부렸다. 아무리 소리쳐도 안영은 못들은 척했다. 할 수 없이 부차가 오자 안영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저는 제왕의 명으로 오왕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리석어서 남의 말에 잘 속습니다. 아까 자꾸 천자께서 저를 찾는다고 하더군요. 왕이 천자라면 오왕은 어디 계십니까?”

할 말을 잃은 부차는 어색한 웃음으로 난감함을 모면했다.

당시 최강국 진(晋)의 평공은 제를 공격하려고 범소(范昭)를 파견해 허실을 염탐하게 했다. 범소는 일부러 술잔을 떨어뜨리고 경공의 술잔으로 마시겠다고 고집했다. 경공이 무심코 술잔을 범소에게 내밀자 안영이 재빨리 다른 잔을 주었다. 범소는 취기를 빌미로 성주(成周)의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강요했다. 미리 안영의 지시를 받은 악사들은 끝까지 거절했다. 걱정이 된 경공이 강국인 진의 사자를 화나게 했으니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안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범소가 예의를 모르겠습니까? 술자리에서 그가 한 행동은 우리나라의 군주와 신하 사이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 제가 넘어가겠습니까?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천자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만약 성주의 음악을 연주했다면 천하에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귀국한 범소는 평왕에게 제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안영에게 쫓겨난 적이 있던 공자까지도 안영의 탁월한 지혜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외교적 수완을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훌륭하구나! 술잔을 지키면서도 천 리 밖의 일을 해결하다니!”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더욱 안영에게 반했다. 그는 안영이 지금 살아있다면 자신은 그의 말고삐를 잡고 종노릇을 하겠다고 말했다. 안영의 위대함은 이와 같았다. 담박한 사람이라야 임기응변이 가능하다. 안영묘의 담박함은 그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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