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주거권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등 10여개 시민단체가 21일 서울시청 앞에서 ‘고시원 화재 사건, 거꾸로 가는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공급 정책 시정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피켓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21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주거권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등 10여개 시민단체가 21일 서울시청 앞에서 ‘고시원 화재 사건, 거꾸로 가는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공급 정책 시정하라 기자회견’을 열고 피켓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21

“수급비로 보증금 마련 못해”

공급 물량 부족한 것도 문제

“주택 공급정책, 재검토해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정말 안타까웠어요. 저도 고시원 생활을 해봤지만 고시원 화재는 예견된 인재에요. 여러 공동가구가 생활하다 보니까 화재 하나도 큰 사고로 번지는 게 많죠…. 사실 고시원은 사람 살 곳이 못돼요. 하지만 보증금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그야말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된거죠.”

기초생활수급자 윤모(57, 남)씨는 8년간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다. 윤씨가 살고 있는 쪽방촌 내 소화기는 단 한개, 스프링클러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윤씨에게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소식은 남일 같지 않은 비극이었다.

폐암을 앓고 있던 윤씨는 최근 합병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쪽방촌에서 벗어나고자 서울시 매입임대주택에 신청했지만 입주하지 못했다. ‘500만원’의 보증금이 없었기 때문. 그는 “한달에 한번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로는 보증금 같은 목돈을 마련할 수가 없다”며 “나가서 일을 하면 수급이 끊기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윤씨와 같이 고시원·쪽방촌·비닐하우스 등을 전전하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정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다수의 주거취약계층은 보증금 등 주거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저소득층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일지라도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난 8일 화재가 발생한 국일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도 임대주택이 아닌 또 다른 고시원으로 이주했다. 또 다시 화재가 날까 두렵지만 보증금도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뿐 이라는 게 거주자들의 설명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114만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최저주거기준은 매우 비좁은 곳에 살거나 주택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경우를 말한다. 고시원이나 숙박업소(모텔), 판잣집 등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37만 가구에 달했다.

주거취약계층이 최저주거기준만이라도 넘긴 주택에 살 방도는 현재로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시 SH공사 등이 시행하는 임대주택뿐이다. SH공사 임대주택의 경우 평균 임대보증금은 1400만원, 평균 임대료는 13만원정도다. 이 가운데 매입임대 1순위자는 400만원대까지 보증금이 낮아지긴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엔 1순위자에 들어가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0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앞에 추모 꽃이 놓여있다. 전날 새벽 이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천지일보 2018.11.10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10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앞에 추모 꽃이 놓여있다. 전날 새벽 이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천지일보 2018.11.10

보증금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침에 비해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토부 지침에 따르면 전세·임대주택 전체 물량의 15%는 주거취약계층용으로 공급돼야 한다. 매년 전세·매입임대주택은 4만호가량 공급됐다. 하지만 2008년부터 10년간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된 주택은 6819호에 불과했다.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에 살고 있는 김호성(52, 남)씨는 “3년 전쯤, 임대주택 신청을 해서 겨우 가봤더니 원하는 집들은 이미 경쟁률이 15:1도 넘는 상황이었다”며 “다른 집들은 일터와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거권네트워크 등 10여개 시민단체는 2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이후에도 취약계층의 주거 대책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지만 정부는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외에 근본적 대책을 발표하지 않았다”며 “고시원이나 쪽방 등 밀폐된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곤 1인 가구는 아무리 안전을 강화해도 안전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주거취약계층에 임대주택을 거의 공급하지 않았고 전세임대주택은 전혀 공급하지 않았다”며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도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실적들이 얼마나 저조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이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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