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가는 복도
3층 방 29개 밀집한 ‘벌집구조’
서울시 스프링클러 지원 사업
건물주가 설치 거부해 무산돼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불이 나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의 사상자를 낸 종로 고시원이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다니는 좁은 벌집 구조에, 건물주가 서울시의 스프링클러 지원을 거부하는 등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가 난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로 국일고시원 건물은 1983년에 지어졌다. 고시원은 각각 2층 24개, 3층 29개 방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출입구로 드나들기 위해 거주자들이 지나가야 하는 복도는 폭이 약 80㎝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원 2층에 거주했던 정모(41)씨는 “복도가 두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만큼 좁았다”고 증언했다. 소방 관계자도 “이동하기에 다소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고시원의 복도가 좁은 것은 이 고시원 자체가 최대한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른바 ‘쪽방’ 고시원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시원 각 층은 4.95~9.91㎡(1.5~3평) 규모의 방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형태다. 불이 시작된 3층은 ‘ㄷ’자 모양으로 건물 바깥쪽에 17개가 있고 안쪽으로 12개가 들어선 구조다.
게다가 이런 협착한 구조에서 유일한 출입구가 화염으로 막히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진화작업이 끝난 후 1차 현장 감식을 진행한 결과와 목격자 진술을 검토했을 때 최초 발화점을 출입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301호로 추정했다.
인명피해가 커진 이유는 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고시원 건물주가 서울시 스프링클러 지원 사업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초 국일고시원은 1983년에 지어진 노후 건물이라, 2009년 제정된 ‘소방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안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법은 모든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한 규정이다.
문제는 이 고시원이 2015년 서울시의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사업에 신청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노후 고시원 안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을 2012년부터 진행해왔다.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닌 곳 중 거주자 50% 이상이 취약계층이고, 시설이 낡아 불에 취약한 2009년 이전 건축된 고시원이 대상이다. 서울시가 4억원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대신 고시원 운영자는 5년간 임대료 동결하는 조건이다.
국일고시원 운영자도 이 조건을 수용하고 서울시에 지원 사업을 신청했다. 심사를 통해 사업 대상지로도 무사히 지정됐다. 하지만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스프링클러는 설치돼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