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는 등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래 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비상벨과 비상탈출구, 탈출용 완강기만 설비돼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종로 고시원 화재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치료를 받고 있는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의 모습. ⓒ천지일보 2018.1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는 등 2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래 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비상벨과 비상탈출구, 탈출용 완강기만 설비돼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종로 고시원 화재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치료를 받고 있는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의 모습. ⓒ천지일보 2018.11.9

“전기 끊겨 컴컴해… 거주자 대다수가 노인”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시커먼 연기에 곧장 비상 탈출구로 가서 문을 열었는데 열리지가 않더라, 우왕좌왕하며 연기를 많이 마셨다. 전기도 끊겨 컴컴했다. 경보음 소리? 듣지 못했다.”

9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에서 탈출한 생존자 정모(69, 남)씨는 “연기를 많이 마셔서 가래를 뱉어내면 아직도 시커먼 게 나온다”며 이같이 증언했다. 기술직에 근무하는 정씨는 이 고시원 4층 옥탑방에서 홀로 6년간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날 오전 5시쯤 종로구 관수동의 고시원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고시원 3층 출입구 부근에서 발생한 불은 2시간 만에 진화됐다. 고시원에서 탈출한 정씨는 현재 손과 눈에 2도 화상을 입고, 연기를 흡입해 서울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불이 난 고시원 건물에는 자동경보설비와 비상벨, 비상 탈출구, 완강기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정씨는 화재 당시 비상 탈출구의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건물 내 비상벨 또한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9

그는 “새벽 5시쯤 밑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길래 처음엔 누가 싸우는 줄 알았다”며 “이 시간에 싸우는 게 이상해서 문을 열었더니 그때 연기가 확 들어왔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큰일났다, 어떡하지’ 했는데 밖에 있던 소방관이 들어와서 마스크를 씌웠다”며 “옥상에 비상 탈출구가 있어 가서 열었는데 잘 안 열렸다”고 말했다.

앞서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사상자들이 당황해서 건물 내 완강기나 비상 탈출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씨는 비상 탈출구가 평상시에도 뻑뻑해서 잘 안 열렸다고 기억했다.

정씨는 “비상탈출구가 안 열려 지체되는 바람에 연기를 많이 마셨다”며 “정신없이 겨우 층을 내려와서 찬 공기를 마시고 나서야 ‘아 살았구나’ 느꼈다”고 탈출 상황을 설명했다.

‘비상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원래는 따르릉 거리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게 돼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며 “아마도 불길이 번지자 차단기가 내려가서 그런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시원 거주자가 청년보다는 노인이 대다수였다고 증언했다. 실제 이 고시원의 거주자들은 대부분 생계형 노동자였고, 사상자 연령대도 40~60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씨는 “나이 많은 사람 받아주는 고시원이 별로 없는데 유독 이곳만 (노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관의 도움 없이 파이프를 타고 극적으로 탈출한 생존자도 있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1.9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건설노동자 김모씨는 병원 관계자를 통해 “창틀에 고인 빗물로 코를 닦고 겨우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혼자 3층에서 파이프(배관)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며 “손에 걸리는 걸 잡고 내려왔는데 온도가 너무 높아서 왼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특히 처음 불이 난 것으로 알려진 3층 출입구에서 가까운 방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서울 종로소방서는 이날 새벽 5시께 종로구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7명과 부상자 11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고시원 2층엔 24명, 3층엔 26명, 옥탑방 1명이 거주했다고 알려졌다. 사상자 연령대는 40~60대로 대부분이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였다. 오래 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다. 비상벨과 비상탈출구, 탈출용 완강기만 설비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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