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남북은 11월 1일부터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중단했다. 자발적 평화가 아니라 ‘강요된 평화’라고나 할까. 총구를 내려야 한다는 신뢰구축의 명제는 총구를 뒤로 빼는 간접적 방식으로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 5㎞ 이내에서 모든 포 사격 훈련과 야간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했다. 바다에서는 해상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해안포문을 폐쇄했다.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명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에 따른 조치이다. 한국전쟁 종전이후 상호 불신아래 끝없이 벌여온 군사적 적대 행위가 65년 만에 종식된 것이다. 이번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는 주변국의 정치적 종전선언 없이 추진돼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실질적 종선선언이라고 할 9.19 군사합의가 계획된 일정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판문점 공공경비구역, JSA 비무장화는 지난달 말 남북한과 유엔군 사령부가 공동검증을 통해 제대로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판문점이 군사대결의 상징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또 민간선박 자유항행을 위한 한강하구 공동조사도 곧 착수하는 등 남북 긴장으로 유명무실했던 정전협정의 정상화 과정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이달 안에 최전방 감시초소인 GP도 각각 11개씩 시범 철수하는 등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방안도 당초 방침대로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남북의 군사적 신뢰와 군축의 길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는 남북 경협 등 앞으로 이어질 남북 관계 교류협력사업에서 중요하다. 북미 간 핵협상이 진전되고 관계가 개선될 경우 남북한 경제 사회 문화 교류사업은 남북 간 신뢰관계여부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주국방의 숙원과제인 전시작전권 전환문제에도 도움이 된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두 차례 연기한 이유가 남북관계 악화와 군사적 위협이었던 만큼 이제는 ‘안보 불안’을 이유로 반대할 명분이 약해졌다. 정부가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시작전권 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비핵화가 핵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또한 필수적이다. 남북은 우선 군사적 합의만큼이라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은 비핵화 협상과 대북제재 완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한반도가 평화로 가는 길에 남북 경제협력과 북한 경제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교류가 늘면 평화를 추진하는 힘이 작용한다. 사실 총구를 빼는 일보다 신뢰도 높은 경제교류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간 군사 충돌의 역사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경제 의존도가 높고 문화·종교적 동질성이 높은 인접 국가 간에는 전쟁 확률이 낮았다. 상호 교역과 투자가 많은 국가 간에는 전쟁으로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경제교류 활성화로 북한이 실질적으로 변화하도록 해야 새로운 남북관계와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린다. 북한 경제를 발전시켜 남북 간 격차를 줄여가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점차 회복해 가야 한다. 만일 북한이 원하는 대로만 끌려가면 경제협력이 ‘퍼주기’가 되어 북한의 ‘도덕적 해이’가 커지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북한의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남북 경협이 최대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원칙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첫째, 남북 협상에서 북한의 경제 개혁 조치를 요구하고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아직 북한은 중국·베트남 개혁·개방 시기의 법과 제도를 갖추지 못했다. 소유권을 인정하고 사기업을 설립하고 시장을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는 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기업의 경제적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북한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북한에 진출해 북한 기업이나 북한 주민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면 북한은 바뀌지 않는다. 둘째, 남북한 경제의 장점을 결합해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세계 경제발전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의 개발 경험과 자본, 기술이 북한의 천연자원, 저렴한 노동력과 결합하면 북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셋째, 국제 협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남북 경협은 북한이 국제무역과 투자 관계를 회복하고 동북아의 생산·무역체제에 정상 국가로 편입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 개발의 막대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라도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들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경제기구에 앞으로 순차적으로 가입하도록 설득하고 유도한다면 그보다 더 공고한 평화체제는 다시 없지 않을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