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65년 고요한 정적이 흐르던 비무장지대 안에 발파소리가 요란하다. 9.19 남북군사합의문에 따라 시범적으로 DMZ안의 GP 11개를 철수하는 폭음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은 중부전선의 까칠봉 GP에 대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방문한 ‘사적초소’라며 폭파를 거부하고 나머지 10개만을 폭파했다. 북한군은 GP를 민경초소라고 부른다. 우리의 수색부대 개념인 민정경찰을 북한군은 ‘민경’ 즉 민사행정경찰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1974년 7.4남북공성명 채택 후 북한은 끊임없이 민경초소를 남쪽으로 전진 배치해 왔다. 전체 전선의 남진이라는 군사전술적 목적 실현 외에 DMZ 안의 농토를 활용하려는 또 다른 경제적 목적 실현을 위해서였다.

북한군의 민경초소는 민경대대가 관리하며 소속은 총참모부 정찰국 소속이다. 민경부대는 평소에는 민경초소를 지키지만 일단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정찰부대로 활용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민경부대 군인들은 북한 전체 군인 중에서 가장 출신성분이 좋은 군인들로 조직된다. 정찰이란 특수 사명도 사명이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남쪽으로 월남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항상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대우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1980년대 이전까지 민경부대만큼은 항상 최고의 공급을 해 주었다. 

아무튼 총칼로 마주 서 70여년을 버티어 온 비무장지대에서 총구가 내려지는 대신 뒤로 물러서는 일은 평화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일각에서는 GP의 철수를 두고 과도한 안보걱정을 하는데, 언제까지 분단의 장벽을 그대로 놔두고 살자는지 되묻고 싶다. 총구는 내려지는 것이 아니며, 다만 뒤로 물러설 뿐이다. 이제 분단의 장벽은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가 하는 또 다른 논쟁의 장으로 다가서고 있다. DMZ는 천연자원의 보고이며, 나아가 처절했던 20세기 냉전의 마지막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던 DMZ는 지금 GP폭파의 발파소리로 요란하지만 “제발 나를 내버려 둘 수는 없나요?”라는 하소연을 우리에게 외치는 듯하다. 

한 때 ‘DMZ세계평화공원’이 논의됐는가 하면, 또 얼마 전에는 ‘DMZ학회(회장 손기웅 박사)’가 주체가 되어 ‘UNDMZ평화대학’ 설립의 기발도 올린 상태이다. 유엔DMZ평화대학 발상은 정말 훌륭한 것이다. 평화대학이 설립된다면 자연히 평화공원도 뒤따라 생겨나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엔평화대학에 와서 전쟁과 대결의 반평화를 공부하고, 나아가 평화공원을 통해 20세기 처절했던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인류는 더욱 우리 민족에 관심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의 총소리가 울려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 콘센서스를 강조하게 될 것이다. 국방부에 당부 드리고 싶다. 제발 비무장지대 GP초소를 모두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군사적으로 요새화된 GP에는 총만 없으면 그 자체가 박물관이 되고 평화공원이 되며, 나아가 유엔DMZ평화대학의 교사가 될 수 있다. 북한 쪽도 마찬가지이다. 북한군 쪽 GP는 우리 GP처럼 단순한 감시초소가 아니라 지하갱도화된 전략적 요충지로 강화돼 온 곳이다. 감시초소는 눈에 보이는 것일 뿐 민경초소들은 모두 지하갱도로 돼 있고, 그것은 전쟁을 치룰 수 있는 반핵, 반화학전, 장기전의 요새로 강화돼 있다. 병력만 철수하고 잘 보존하면 언제든 박물관과 휴식처 내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얼마 전 남과 북은 DMZ 내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을 위한 3.5㎞ 남북관통 도로도 뚫었다. 지금과 같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가 다년간 이어지면 분명 냉전의 마지막 상징물은 영원한 ‘평화의 상징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남과 북 각 각 11개씩의 GP 폭파는 ‘축포’로 쳐도 좋다. 그러나 더 이상의 GP를 모두 날려버리면 우리는 역사적 유물을 발로 차 버리는 ‘비명’ 소리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은 분명 아까운 예산을 들여 분단의 땅에 장벽을 쌓고 그것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 한 때 무모한 그 아둔함은 이제 남과 북 집권세력의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질 차례다. DMZ보다 더 훌륭한 자연보고, 국제적 관광자원은 지구상에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은 관광객들이 거기서 다시는 지구상에 폭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고귀한 가치를 공부하고 돌아가듯이, 우리 DMZ를 찾은 인류는 다시는 분단과 대결이 없어야 한다는 위대한 평화학을 공부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DMZ 안에서 더 이상 발파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