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메이지 시대 사람들같이 어떤 국난이 오더라도 꺾이지 말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지난 23일 일본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식에서 아베 일본 총리가 축사에서 한 말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바쿠후(幕府)체제를 붕괴시킨 ‘개혁적 사무라이들’은 시대적 ‘통찰’을 통해 ‘근대국가’ 일본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은 봉건체제를 붕괴시킴과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 걸쳐 ‘거대한 변화’를 촉발시킨 혁명적인 시도였다. 오늘날의 그 일본의 출발이라 하겠다.

아베 총리는 평소 메이지유신을 이끌어 낸 ‘삿초(薩長)동맹’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중심에 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식을 국가 차원에서 요란하게 치렀던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게다가 아베는 지난 9월에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역대 최장수 총리를 예약한 상태가 아니던가. 이래저래 아베는 지금 ‘메이지 영광’을 재현하고픈 정치적 욕망이 뼈에 사무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태생적으로 ‘극우’ 일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그의 장기집권을 위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도덕성이 빠진 미래는 없다

아베 총리는 이제 더 빠른 속도로 평화헌법(9조)을 바꿔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는 데 총력을 쏟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메이지 영광이 ‘부활’한 것처럼 상징화시켜 나갈 것이다. 이번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식은 그런 의지로 충만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일본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지만 ‘역대 최장수 총리’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아베노믹스’는 절정을 누리고 있다. 국내 여론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며 ‘3연임 총리’의 가장 결정적인 배경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의는 역대 최강급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구미를 적절하게 맞춰가며 극우노선을 더 명료하게 추진해 갈 것은 명료하다. 중국의 반발이 부담이긴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국과의 ‘실리외교’를 통해 소통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마침 아베가 25일 500여명의 기업인을 데리고 중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이다. 2011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이후 7년 만에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이다. 그만큼 아베 입장에서는 각별한 외교 행보라 하겠다. 물론 양국 간 경제협력에 초점을 두겠지만 그 저변에는 아베의 욕망과 자신감이 깊게 묻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정치적 욕망이 어디까지 채워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내치의 정치적 기반이 탄탄하고 미국과 중국을 잇는 실리외교로 몸값을 한층 높이고는 있지만 그의 ‘메이지 예찬론’이 결국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메이지 시대’는 아베에겐 ‘영광’이었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메이지 시대의 ‘외적 상징’은 바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도덕성은커녕 기본적인 인권 개념조차 없다. 특히 한국에겐 단군 이래 가장 치욕적인 ‘식민지 피눈물의 역사’를 강요했다. 한국 국민들이 그 역사를 잊을래야 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전쟁범죄를 자행한 그 메이지 시대를 예찬하며 공공연하게 요시다 쇼인을 칭송하는 아베의 행태는 그 자체가 이미 과거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극우적 반동’에 다름 아니다. 도덕적 가치의 붕괴요 병적 몽환에 가깝다. 심지어 삿초동맹의 다른 축인 정한론자(征韓論者)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영웅으로 미화하는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은 일본과 아베의 역사인식이 지금 어디까지 갔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히틀러의 ‘나찌 시대’를 예찬하는 기념식을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독일은 이미 ‘문명 국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사죄했다. 우리는 지금도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의 흑백 사진 한 장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당시의 유명한 논평도 잊지 않고 있다. 그 독일은 지금 유럽을 넘어 세계를 이끄는 선진 국가가 됐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멀었다. 아베의 군국주의 망령은 결국 일본의 후진성을 더 명료하게 부각시킬 뿐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버젓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메이지를 칭송하며 ‘극우 내각’을 꾸리는 등 시대착오적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야만의 역사’를 좇아 ‘문명의 역사’를 메치겠다는 것인가. 한마디로 일국의 도덕적 가치를 스스로 짓밟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본이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지금은 사죄와 성찰이 먼저여야 한다. 그것이 ‘문명 국가’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다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의 얘기가 여전히 아프다는 점이다. 아베가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식을 하던 23일, 우리 정치권에서는 국정감사장에 대통령 영부인의 과거 선거운동 동영상이 나오고 여야 간 고성이 터졌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전직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도 곧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일본을 보며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네 마음도 영 편치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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