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미국 중간선거가 끝났다. 당초 예상대로 하원은 민주당의 승리였다. 공화당 우위의 하원의석이 8년 만에 깨진 것이다. 반면에 상원에서는 근소하게 공화당이 앞섰다. 이로써 미국정부는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의 형태를 갖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 큰 시험대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대결과 협치, 어느 쪽도 예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역대 사례를 보면 미국 중간선거는 대체로 집권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선거사의 한 획을 그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패했다. 이런 경향은 이번 중간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따라서 이번 중간선거는 트럼프 행정부 2년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아주 강했던 선거였다.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선전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하원의 주도권은 민주당에 넘겨줬지만 공화당은 상원에서 다수당 의석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접전 지역이었던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가 신승하는 등 핵심 지역에서 공화당의 약진이 돋보였던 것도 그 배경이다. 트럼프가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이 나름 선전할 수 있었다고 보는 평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코르테즈, 미국정치의 희망을 쏘다

이번 중간선거가 트럼프 행정부 2년을 심판하면서 공화당 지지층의 결속을 이끌어 낸 것은 분명하다. 전국적인 선거결과도 나쁘진 않았지만 주요 접전지역에서의 승리로 차기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특히 높은 투표율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반을 넘어서 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 1억 1300만명이 투표권을 행사해서 미국 선거정치사상 처음으로 참여자 1억명을 넘겼다고 CBS뉴스가 7일 보도했다. 보통 40% 안팎을 보였던 투표율이 이번에는 49%에 달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투표 결과에 담겨있는 유권자의 표심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공화당의 표심이 ‘패권적 미국’을 연상케 한다면 민주당은 이미 ‘미래의 미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부의 갈등까지 증폭시키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후퇴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대결을 택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낸 셈이다. 높은 투표율과 공화당의 선전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번 중간선거까지는 나름 선전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이번 중간선거 결과 뉴욕주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29세의 라틴계 여성 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코르테즈는 지난 6월의 당내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거물인 10선의 백인 현역의원 조 크롤리(Joe Crowley)를 제치면서 이미 돌풍을 예고했었다. 그리고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80%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그에 대한 관심은 거물 현역을 예비경선에서 이겼다거나 또는 정치경력이 일천한 바텐더 출신의 최연소 여성이라는 데서 오는 호기심이 아니다.

코르테즈의 선거홍보영상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가치가 무엇인지,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를 소박하게 말하고 있다. 코르테즈는 지역의 일반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뉴욕 빈민지역에서 맞은편의 높은 빌딩 숲을 바라보며 ‘변화를 위한 도전(The Courage to Change)’을 말하고 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코르테즈의 지역구인 뉴욕주는 상대적으로 유색계 유권자들이 많은 편이다. 바로 그 곳에서 트럼프의 ‘차별적 인종주의’와 정치적 기득권 세력에 정면 도전을 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응원할 정도였다. 코르테즈는 엄밀히 따지면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키즈’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샌더스의 대선 캠프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신념도 그와 매우 유사하다. ‘메디케어’ 대상 확대와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 폐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과 총기규제 등 진보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코르테즈는 당내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모임의 멤버이기도 하다.

코르테즈는 미국정치의 주류들이 움켜쥐고 있는 ‘돈선거’를 거부했다. 기업들의 후원을 아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치현실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반대파들이 ‘좌파’라고 비난할 때 자신은 좌파 후보가 아니라 ‘바닥권 기층’의 후보라고 목소리 높이며 노동자 계급의 권익을 강변했다. 물론 유럽정치에서는 흔한 얘기지만 미국 뉴욕주에서 29세 여성 정치신인의 목소리치고는 대담한 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르테즈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은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했다. 사상 처음으로 무슬림 여성이 당선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정치는 그 내면으로부터 이미 ‘거대한 변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민주당이 그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의 거친 ‘편가르기 정치’가 어디까지 갈지,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과 비전이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년여 남은 차기 대선까지 코르테즈 의원의 활약과 함께 미국정치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그 진화의 양상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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