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비교적 길었던 지난 추석 연휴 때 포항에서 또 비극적신 소식이 전해졌다. 추석 연휴 때 한 펜션에 숙박했던 남성 4명이 이틀 뒤 국도 변에 주차한 승용차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그중 한 명이 숨졌다는 소식이다.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이들은 20대와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추석연휴를 즐기거나 아니면 부모님 곁에 있어야 할 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로서 슬픔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난 6월 정부가 ‘OECD 보건통계 2018’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그 가운데 국가별 자살률(2015년 기준)에 대한 자료가 눈길을 끌었다. 단연 대한민국이 25.8명(인구 10만명당)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11.6명보다 무려 두 배 이상이며 더욱이 2위인 라트비아보다도 무려 7.7명이 높다. 이 정도면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적이다. 아니 ‘온전한’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절망과 좌절, 고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고위관료와 재벌, 동방불패의 동업자들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경정급 이상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를 보면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다. 지난 2016년부터 올 8월까지 116명의 퇴직자 취업 심사대상 중 94명(81%)이 삼성 등 대기업을 비롯해 대형로펌이나 도로교통공단 등 취업제한 업체에 고위급 임원이나 고문 등으로 재취업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무관급 이상의 고위직 퇴직자 24명은 모두 유관기관이나 기업 등에 고위직으로 다시 취직했다.

홍문표 의원에 따르면 2016년 12월 경무관으로 퇴직한 경찰 간부는 4개월 만에 두산중공업 고문으로 취업해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가 하면 치안감 퇴직자 8명 전원은 삼성물산, SK텔레콤, 법무법인 대륙아주, 도로교통공단, 총포화학안전기술협회 등에서 이사장이나 감사 등의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다. 경찰 등 권력기관이 그동안 대기업 비리에 왜 취약했는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유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런 전관예우는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익히 알려진 내용이며 교육부를 비롯해 정부 고위 관료들 전반의 문제이고 이미 만연돼 있는 모습이다. 최근에 불거진 공정위 출신들의 퇴직 후 재취업 실태를 보면 공정위 자체가 ‘공정성’을 짓밟고 있었다. 검찰 자료를 보면 공정위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직 간부 18명을 고액의 연봉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민간기업 16곳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고위급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위해 민간기업을 압박했다니, 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뿐이 아니다. 공정위 퇴직자들 가운데 최고의 재취업은 대기업이 아니라 유명 로펌이라고 한다. 지난해 5월 기준으로 5대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팀 멤버는 모두 367명, 그 가운데 공정위 출신이 52명이나 된다. 공정위 출신들이 로펌에서 하는 일은 대체로 자신이 일했던 공정위를 상대로 거액의 과징금을 깎아주는 데 앞장서는 일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고액의 연봉이나 자문료를 챙길 것이다. 물론 그만큼 국민의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혹자는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재취업 할 때 심사를 받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공직자윤리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직자윤리법 17조 1항을 보면 비교적 꼼꼼하게 취업제한의 범위를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설사 기준이 있더라도 변칙으로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취업제한에 꽉 막혔다 하더라도 관할 공직자윤리위의 승인을 받으면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심지어 심사 자체를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직자윤리위 심사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그들만의 심사와 그들만의 재취업 열풍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골병’이 들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기득권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재벌과 고위관료들의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고 뭔가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류계급, 즉 기득권체제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동방불패(東邦不敗)’는 그들의 깃발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수억원이 올랐다는 강남의 집값도 마찬가지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을 포함해 경제 정책 등을 집행하는 기관 중 강남 3구 주택 보유 비율은 기재부 54%(13명 중 7명), 한국은행 50%(8명 중 4명), 국토부 34%(29명 중 10명)를 각각 기록했다. 현실이 이럴진대 이들이 펼치는 부동산 정책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소수의 기득권세력들이 제 배를 불리며 그들만의 특권을 쥐어짤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피울음을 토해내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자살로 그들의 눈물과 절망을 대변하고 있다. 며칠 전 ‘노인의 날’에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4명 가운데 1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전해졌다. 지워버리고 싶지 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이익을 먼저 살피고 보듬어야 할 고위공직자들도 이미 ‘괴물’이 돼 버렸다. 그들을 바닥부터 혁신하지 않고서야 어찌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높고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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