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우려가 사실이 됐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시험 문제를 두 딸에게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러 정황 증거가 나타나 아버지와 두 딸이 피의자로 전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자매가 동시에 전교 1등을 하는 바람에 시험지 유출이 알려지게 됐지만, 전교 1등이 아닌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다면 자매는 명문대에 아무 일 없이 진학했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다. 자녀의 성적 욕심에 학사관리를 주관하는 교무부장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교사로서의 자존감마저 팽개쳐 버린 행동 탓에 대한민국 교사와 학교 내신이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3명의 내신비리에 국한하지 말고 교육부와 합동으로 숙명여고 전·현직 교직원 자녀의 최근 10년간 성적과 대학진학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 자녀가 다니고 있음에도 학교의 시험지 관리를 책임지는 교무부장 보직을 부여한 학교장에게도 엄중히 책임을 묻고 관련여부를 수사해야 한다. 입시부정이 있을 개연성이 큰 다른 학교도 전수조사가 바람직하다. 아마 고등학교 내신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해서 대한민국 모든 고교의 내신관리와 입시비리를 조사하면 정유라급 핵폭풍이 불 것이다.

학부모들의 내신 관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시험출제·관리 절차를 규정한 학업성적관리지침을 강화하고 인쇄실 등에 CCTV를 설치하고, 교사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 대책으로 수시와 학종, 내신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제도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기득권층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수시축소, 학종폐지, 수능위주 대학입시로 개편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학종은 선량하게 태어났지만 사교육업체와 기득권층 학부모의 야합으로 변질돼 더 이상 치유가 불가능한 지경에 도달했음을 숙명여고 사태가 말해준다. 미국에 유학했던 교육 관료들이 실적을 위해 변질될 가능성을 간과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를 성급히 도입한 결과다. 수능은 전국 학생들과 경쟁하는 제도라 학교 친구와는 경쟁보다 협력을 모색하게 해 고교 생활을 알차게 만든다. 내신, 학종은 같은 반 친구와 협력보다는 경쟁을 요구한다. 친구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경쟁을 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다.

필자도 중학교에 근무하며 매년 30여명의 학생부를 작성했다. 1년간 학생을 관찰하며 기록한 보조문서가 있어도 이를 학생부에 한명 한명의 특성을 세분해서 기록하는 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예문을 참고해서 복사-붙이기하고 일부만 수정하는 식이다. 하물며 고등학교 교사들이 대학 합격 여부를 좌우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학생부를 학생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해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

교사들은 수업과 잔무, 학부모의 등쌀과 학생들의 무례함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네가 1년간 생활한 기록은 네가 제일 잘 알겠지”라며 학생에게 스스로 학생부를 작성해오도록 하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학부모와 학생은 사교육 컨설팅 업체나 자소서 대필 업체를 찾아가 돈을 주고 하청을 준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이 자소서를 소설로 꾸며줘 자소설이 된다. 심지어 수천만원을 받고 컨설팅 업체가 3년간 학생의 활동을 밀착 지도하기도 한다.

진정성 있는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학교생활을 만들어 온 학생이 있다 해도 공정성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어 수술이 불가피하다. 학생부에서 넘쳐나는 입지전적인 학생은 학생부 세계에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학종은 학생시절부터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위선의 입시다. 학생부를 심사하는 입학사정관도 다 안다. 암암리에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의 입시제도로 수준이 떨어졌다. 돈 없고, 빽 없는 흙수저 부모는 시험지를 빼내고, 자소서를 대필하고, 논문에 공동저자로 등록하고, 해외봉사를 가는 등의 대외활동을 시킬 여력이 없다. 교육부 관료와 교사, 대학교수들이 학종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수시 10%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수능위주 정시로 가야 한다. 수능 80%에 내신 20% 정도를 반영하면 공교육 붕괴도 막을 수 있다. 내신은 부모의 능력으로 자녀의 대학을 바꿀 수 있지만, 수능은 오직 자신이 가진 능력만 발휘된다.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딸도 서울대를 못 가고 서강대를 갔던 공정함이 지금은 가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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