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호가호위(狐假虎威)
[고전 속 정치이야기] 호가호위(狐假虎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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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호가호위란 여우 주제에 호랑이를 등에 업고 설치는 자를 가리킨다. 구시대에만 이런 자들이 있었을 리가 없다. 지금도 애완용 동물처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권력자의 눈앞에서 알랑거리다가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려고 설치는 자들이 한둘이겠는가? 떡고물만 받아먹는 자들은 그래도 조금은 봐줄만하다. 그러나 권력을 등에 업고 설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들 때문에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당현종 시대의 총신 안록산(安綠山)은 정말 황당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황제의 은총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기보다 열 살도 넘게 어린 양귀비를 기꺼이 양어머니로 받들었다. 

안록산보다 더한 인간도 있었다. 이런 인간들은 하찮은 이득을 위해서라도 온갖 방법으로 상대를 속인다. 당중종 시대 어사대부 두종(竇從)이 전형적인 인간이다. 어사대부는 3품관이지만 사법감찰부 수장으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됐다. 그러나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인간은 환관의 세력이 강하자, 수염이 없는 사람만 보면 환관인 줄 알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중에는 더 큰 기회를 잡으려고 황제 이현(李顯)이 친히 중매쟁이를 자처하자 선뜻 노파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연말에 중종이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이현이 두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찍 배필을 잃었다니; 오늘 저녁에 내가 그대의 배필을 정해주리다.”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누군가 내궁에서 나왔다. 등롱을 들고 인도하는 환관을 따라 금빛 파라솔 가려진 여인이 따라왔다. 천천히 대전으로 온 그녀는 두종의 맞은편에 앉았다. 황제는 풍습에 따라 두종에게 ‘철선시(撤扇詩)’를 지으라고 명했다. 시를 완성하자 부채가 걷히며 예복이 벗겨졌다. 폭삭 늙은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위(韋)황후의 유모로 이미 70세가 넘었다. 두종은 고작 40세였다. 황제와 대신들은 박장대소 했지만, 그는 황제의 중매를 거절하지 못했다. 두종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황제나 황후에게 접근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모의 남편을 ‘아(阿)’라고 불렀다. 두종은 늘 ‘황후아’로 자칭하면서 의기양양했다. 경운(景雲)원년(710), 중종의 조카이자 예종의 아들 이융기(李隆基)와 고모 태평공주가 정변을 일으켜 위황후를 몰아냈다. 두종은 즉시 늙은 아내를 죽여 수급을 바쳤다. 예종의 신임을 얻은 그는 몇 년 동안 재상을 지냈다. 늙은 아내를 이용해 다시 한 번 성공한 것이었다.

아부꾼에게는 수치심이 없다. 이익이 있으면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마저 기꺼이 버린다. 명의 영종(英宗) 시대에 왕진(王振)이라는 환관이 있었다. 황제의 총애를 얻어 왕명을 출납하며 영종으로부터 ‘선생’이라는 칭호를 들었으며, 귀족들조차 ‘옹부(翁父)’라고 불렀다. 그의 문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환관인 주제에 수많은 미녀들을 거느렸지만 늘 허전했다. 공부낭중 왕우(王佑)는 미남이었다. 왕진이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 잘생긴 왕우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멋진 턱수염이 유행이었는데, 청년에게는 수염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진이 그 이유를 묻자 왕우는 제법 낭랑한 목소리로 ‘노야께서도 없는데 제가 감히 수염을 기르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왕진은 크게 웃으며 왕우를 양자로 삼았다. 사대부로서는 환관의 양자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수치였다. 그러나 왕우는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출세의 지름길로 생각했던 것이다. 기개가 사라진 세상은 이런 자들이 횡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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