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귀기인야(貴其因也)
[고전 속 정치이야기] 귀기인야(貴其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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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은 일찍부터 고도의 철학적 사색을 통해 자연계로부터 인류사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현상에서 발생, 발전, 변화라는 규율과 계기를 찾아냈다. 도가는 ‘귀인’이라는 관점으로 ‘도불가위(道不可違), 인이제지(因而制之)’라는 소박한 변증법적 관념을 제시했다. ‘인’은 승인(承認) 또는 순응(順應), ‘제’는 지배(支配) 또는 제어(制御)를 의미한다. 귀인 즉 인을 귀중하게 여겨 제지한다는 말은 모든 일에는 반드시 사물의 객관적인 발전규율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물의 변화에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계기가 있으므로 그것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만든다면 비교적 순리적으로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여씨춘추에서는 용병할 때 ‘귀기인야’ 즉 모든 것을 승리의 요인으로 삼는 것을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이 험난한 지형이나 요새에 의지하면 그것을 자기의 견고한 요새로 삼아야 하며, 적이 어떤 계략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승리의 요인을 살펴서 이길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므로 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용병의 도는 적이 자기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데 있으며, 그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 거꾸로 자기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상대에게 달려 있다. 자기가 승리의 요인을 갖추지 않고 적의 실수를 바라다가는 이길 수 없으므로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는 적이 실수를 했을 때이다. 적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지만, 적이 실수를 했음에도 그것을 놓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오자(吳子) 요적(料敵)에서는 당시 전략가들이 점을 쳐서 공격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비판하고, 적의 정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8가지의 기준을 열거했다. 더위를 무시하고 용병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보자,

더위는 기력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높다. 1895년 봄, 이탈리아군은 아프리카 아도아에서 이디오피아군에게 참패했다. 무솔리니는 국민들에게 40년 전의 복수를 하자고 호소했다. 카베리아 장군이 인솔하는 이탈리아군은 토민으로 구성된 1만명의 병력과 대포 50문을 이끌고 국경선 부근 절벽에 진을 친 흑인군 9만명을 공격했다. 이탈리아군은 4열종대로 늘어서서 중앙돌파를 시도했다. 절벽에 있던 이디오피아군은 더위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에게는 더위가 전투보다 더 괴로웠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심했던 것은 이탈리아군이 기어오르려고 했던 절벽이 부석부석하여 무너지기 쉬운 바위였으므로 제대로 발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이디오피아군은 원숭이처럼 민첩했다. 순식간에 이탈리아군은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말았다. 절반이 넘은 병력을 잃은 이탈리아군은 다시 참패했다. 

1789년,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도 더위에 굴복했다. 영국의 동방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더위와 기갈을 견디며 카이로로 진격하던 나폴레옹은 용맹한 마멜룩족의 기병과 마주쳤다. 야전의 귀재 나폴레옹은 즉시 방진을 구축해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불가능은 없다고 외친 나폴레옹은 예루살렘의 북방까지 진출했지만 아트카항에 요새를 구축한 터키군에 가로막혀 9주 동안의 공격을 풀고 퇴각했다. 시리아의 사막으로 퇴각했던 프랑스군은 이집트에서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집요한 토민병들의 공격을 받은 나폴레옹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엄청난 더위는 영웅들도 이길 수 없는 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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