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마치 내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체육언론인회 고문으로 팔순의 체육기자 선배이신 이근량 님이 ‘폭풍아 불어라’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우편을 통해 집으로 보내왔다. ‘이근량이 펴낸 세상 사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선배는 중앙일보 기자 시절, 제일제당과 삼성화재 홍보실장 시절 겪었던 경험과 가족사 등을 담담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써 냈다. 2016년 10월 아내 ‘서 여사’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남겨주려는 의미로 출간했던 책을 다시금 꺼내 들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지워내고 새롭게 꼭지를 써 넣어 이번에 ‘개정 증보판’을 펴냈다고 한다.

책 목차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군대, 스포츠, 그리고 술 이야기’였다. 선배 스스로가 이야기 했듯이 여자들에게 인기 없다는 군대, 스포츠와 술 이야기였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내 입장에서는 많은 공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1939년생인 선배는 육군 상병 출신이다. 일본 육사 출신의 김석원 장군이 이사장 겸 교장직을 맡았던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는 국방의무만은 개교 이래 철저히 교육시켜 온 학교의 전통을 지켜 대학 2학년 때 소집영장도 없이 무조건 용산역으로 달려가 논산행 입영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성남고 출신은 개교 이래 육·해·공군을 합쳐 모두 50명의 장성을 배출해 그 숫자만으로 전국 고등학교서 단연 1위라고 한다. 따라서 선배는 국방문제라면 성남고 출신은 국내 어느 고등학교보다도 자긍심이 높다고 강조한다. 

1965년 중앙일보 견습 1기로 출발한 선배는 입사동기이자 지금은 고인인 노진호 전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함께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편집국 배구팀 멤버로 참여했는데, 유명한 스포츠해설가이자 교육자이며 목사인 오관영 선생이 팀에 합류하면서 그 해 신문사 대항 편집국 배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스포츠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편집국 내에서 “이근량씬 체육부 체질이란 말이야. 술도 꽤나 마실 줄 알고”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체육부 기자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중앙일보가 창간될 무렵의 국내 스포츠계 상황은 미개척지였으며 기자에게는 ‘무한의 공간’이었다는 게 선배의 얘기였다. 견습기자 때부터 매일 아침 기사를 쓰고, 지방 출장을 떠날 때면 신문 한 모퉁이에 기자 이름이 박히는 이니셜이 올랐다. 입사 2년차부터는 당시 가기 어려운 외국을 잘도 나갔다. 일본, 대만, 태국은 물론 멀리 이란까지 출장 가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체육부를 떠나 해외 특파원으로 중동과 독일 등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뒤 언론사를 퇴직하고 잠시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면서 선배는 삼성화재 홍보실장으로 1995년 삼성 남자배구단 창설을 주도했다. 신치용 감독을 먼저 영입한 뒤 한양대 출신의 김세진과 성균관대 출신의 김상우 등 고작 7~8명만을 스카우트 한 채 실업팀으로 결단식을 가진 삼성화재 배구단은 성균관대 출신의 신진식을 현대배구단과의 치열한 스카우트 끝에 확보할 수 있었다. 선배는 신진식 스카우트 과정에서 언론을 역이용하자는 발상으로 삼성의 성균관대 재단 인수에 대한 ‘고급 정보’를 조선, 중앙, 동아 등 종합신문이 아닌 경제지인 한국경제신문을 택해 은밀하게 흘렸다고 밝혔다. 이 기사로 인해 신진식에 대한 대학 측 태도가 하루아침에 변화하면서 스카우트에 일대 전환점이 됐다는 것이다. 선배는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대표이사도 “기사를 흘린 주범이 이근량 단장”이라고 추측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지만 확신은 갖지 못했을 것이라며 20년 만에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은 지금이 비밀을 해지할 시기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근량 선배와는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 당시 취재기자로 공적, 사적으로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체육기자 선배이면서 신성한 병역의무를 마친 공감대를 같이 한 때문인 듯 그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서로 술잔을 주고받을 때와 같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