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서의 남북단일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남북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탁구 담당 기자로 일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남북한 판문점 체육회담에서 단일팀 구성 준비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남북한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뿌듯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당시 체육회담에선 지금까지 남북한 단일팀의 상징이 된 ‘푸른색의 한반도기’와 팀명칭 ‘코리아’, 응원가 ‘아리랑’ 등이 결정됐다.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둔 남북한 탁구팀은 당시 중국과 자웅을 겨룰 만큼의 세계적 강국이었다.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현정화, 유남규 남녀 간판스타가 건재했고, 북한은 여자 단식의 리분희를 앞세워 한국, 북한, 중국이 세계 3강을 주도해 나갔다. 역사적인 남북단일팀은 지바 세계탁구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1위 덩야핑이 버티며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맞아 한국의 현정화, 북한의 리분희, 유순복 등이 맹활약하며 극적인 승리를 거둬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팀의 화려한 성적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남자단일팀도 4강에 오르는 성적을 올렸다.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던 지바 세계대회의 남북단일팀 우승은 이후 한국에서 영화화돼 뜨거운 감동을 재현하기도 했다. 현정화 역할을 한 하지원 주연의 영화 ‘코리아’는 단일팀 구성, 합동훈련, 경기모습, 남북으로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내 재미와 감동을 전해줬다. TV 중계 화면으로 경기를 봤던 한국민들은 한반도기 아래 남과 북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영화 장면에서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현정화와 유남규는 지바 세계대회 이후 몇 년간 선수생활을 더 하다가 지도자로 전환해 현재까지 후진들을 양성하며 대한탁구협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현정화 렛츠런 감독과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은 협회 일원의 자격으로 지난 4일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벌어진 2018 세계탁구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27년 만에 남북단일팀이 출전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단일팀 구성으로 다시 이어진 남북탁구 교류는 갑작스럽게 대회기간 중 이루어졌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이미 남북한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한 체육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 대회에 같이 출전한 남북한은 8강전에서 맞대결 할 예정이었으나 경기 시작 30분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을 선언했다. 탁구스타 출신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과 주정철 북한탁구협회 서기장,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3자회의에서 단일팀에 합의를 했던 것이다. 

이번 탁구 남북단일팀은 여자 단체전 3위로 지바 세계탁구대회 때에 비해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성적보다는 그동안 막혔던 남북 탁구 교류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남북탁구는 앞으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이번에 유치에 성공한 2020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으로 출전하며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탁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인 현정화, 유남규 감독은 비록 이번 스웨덴 세계탁구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떨어져있던 시간의 간격을 메우며 좀 더 가까워지며 자주 경기를 하다보면 지바 세계대회 때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은 이념적, 정치적으로 서로 증오하며 싸우면서도 한때 가까워지기도 했다. 북핵 완전 폐기와 한반도 새로운 평화를 꿈꾸는 현재, 남북탁구 단일팀 1세대가 후배들을 지도해 단일팀 2세대로 이어지며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이 진정한 한 핏줄임을 보여주기를 남북한인들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