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문재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청와대에서 단독으로 만남을 가졌다. 국가현안에 대해 제1야당 대표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인데,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3월 7일 한차례 여야 대표들과 오찬 회동을 가진 바 있다. 이처럼 대통령이 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거나 여야 대치로 정국이 꼬였을 때 난국을 풀기 위해 정치지도자들과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은 과거에도 종종 있어왔다. 이번 두 정치지도자의 만남을 ‘회동’ 또는 ‘회담’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어쨌든 영수(領袖)회담의 성격이다. 

이같이 영수회담은 결국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함이 그 취지인 바 현안을 두고 담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가 성의를 보여야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과거정권에서도 정국이 꼬일 때마다 정치지도자들은 영수회담 카드를 끄집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시에 가장 활발하게, 또 유용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다. 1962년 3월 22일부터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던 박 전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3년 3월 말 윤보선, 허정과 가진 영수회담이 빌미가 돼 군정 연장 종료와 함께 집권하는 기반을 얻기도 했다. 

그 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상황이 극히 좋지 않거나 또 특별한 의도를 가질 때면 영수회담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일협정과 월남 파병문제로 정국이 경색된 1965년 7월 20일, 박순천 민중당 당수와 단독회담을 개최해 대화정치로 난국을 해결했다. 또 1975년 5월 21일 김영삼 신민당 당수와 영수회담을 할 때에는 “처(육영수 여사)가 없으니 이 큰 집이 절간같이 느껴진다”며 박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해 YS의 마음을 흔든 사례도 있었다. 

대통령과 야당대표와의 만남인 영수회담은 정치적 현안이 주류지만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여지가 담겨져야 성공할 수 있다. 과거 성공한 영수회담이 많았지만 상황이 더 꼬인 사례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2001년 1월 DJ-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박근혜 전 야당 대표 간 회동이 그렇다. 당사자들이 현안을 주고받았지만 서로가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주장했던 것이다. 당연히 실패한 영수회담이었던바 청와대측에서는 “마치 싸우러 온 듯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야당에서는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영수회담의 본질은 ‘국가나 정치단체 또는 어떤 사회 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서 의제를 가지고 말을 나누는 데 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단독 회동했으니 유의미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국정을 수행하는 최고 정치지도자들이 차나 한잔 하고 안부 묻자고 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안정과 국민편안을 위한 현안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되고 교류돼야 맞는 일이다.  

통상적으로 1대 1로 이루어지는 영수회담에서는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국내외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총론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고, 야당 대표는 정국 현안 가운데 문제가 되는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짚으면서 관철되기를 원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고, 홍 대표는 북핵 등에 관한 야당 입장을 전하는 한편으로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영수회담이 끝난 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홍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요구한 점을 발표한바, 이에 따르면 거의가 굵직한 현안들이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단계적 핵 폐기 불가와 1년 내 리비아식 핵 폐기,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노력 등 국가안보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야당의 인식 변화는 고무적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발 개헌안 철회, 정치보복 수사 철회, 김기식 임명철회 등을 요구한바 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국민이 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 관철이 향후 정국의 안정적인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현 정국은 냉랭하다. 4월 임시국회가 개최중이지만 여야 입장 차이, 특히 한국당의 개헌, 김기식 금감원장 임명 철회 등 당론으로 인해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채 꼬인 상태로 있다. 제1야당 대표가 영수회담 자리를 빌어 대통령에게 현안 처리를 요구하는 공을 넘겼으니 이제 답은 청와대 차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회담 결과를 두고 사안의 합의 수준에 이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삭막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지만 성과는 수용 여부에 달렸다. 

영수회담의 본질은 꼬인 정국에서 물꼬를 틔우는 일이다. 이번회담의 결과가 정국 운영에 좋은 결실을 맺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국회가 ‘국민의 정치’에 몰입하고, 정부는 국민 안전과 편안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는 참 정치의 통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야당 대표의 요구 가운데 정당하면서도 국민이 원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이 난국을 야당과 함께 풀어간다는 대화의 의지 표명 차원에서 큰 정치, 대의의 정치 면목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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