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제96회 어린이날 행사가 전국적으로 개최돼 5월 5일 하루만큼은 어린이 세상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바깥나들이를 나가는데, 아이의 나이에 따라 가족행사 내용이 달라진다. 대개는 유아기에는 가까운 어린이공원이나 놀이터를 찾고, 또 초등학생이 되면 야구장을 즐겨찾기도 한다. 필자는 야구 경기를 좋아해서 비단 어린이날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잠실야구장을 여러 번 찾았다. 그때마다 아들과 딸은 경기에 대한 흥미보다는 야구장에서 아빠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재미로 따라나서곤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한 즐거운 날의 추억이 됐다.     

이번 어린이날에 전국 야구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던바 그중에서도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지는 행사가 압권이었다. LG와 두산이 홈으로 사용하는 잠실야구장에서는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서울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이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게 되니 꼬마 야구팬들이 어린이날에 반드시 가고 싶어 하는 곳이고, 프로야구는 단연 흥행 1순위다. 그런 연유에서 KBO가 지난 1996년부터 잠실야구장에서 LG와 두산 두 팀의 대결을 어린이날에 고정적으로 붙이고 있는데 22년 역사로 이어오면서 어린이날 두 팀의 경기는 전통을 갖게 됐다.

잠실야구장의 어린이날 행사에서 엘린이와 두린이는 유명세를 탄다. 엘린이(엘지와 어린이 팬의 합성어)와 두린이(두산과 어린이 팬의 합성어)는 LG와 두산이 마련한 어린이날 선물을 푸짐하게 받지만 불꽃 튀는 경기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후 11년 연속 매진 사례를 기록한 사실만 봐도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는바 어린이날에 열린 두 팀 간 맞대결에서 작년까지 기록은 LG가 13승 7패로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2만 500명의 엘린이와 두린이의 자존심 싸움에서는 엘린이가 고개를 떨궜다.      

프로야구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작년 840만 688명 관중을 보인 데 이어 KBO는 2018년 정규시즌 관중 목표를 879만명으로 정했다. 올 3월 24일에 개막한 야구는 4월 15일 관중 100만명을 넘기더니만 이번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200만명을 돌파했다. 정치·경제 분야 등에서 부침(浮沈)을 타는 사회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건전 스포츠를 즐기려는 야구팬들이 늘어나면서 프로야구가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각 팀 감독과 코치들은 승리 의지가 높아지고 선수들도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프로야구를 각본이 없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합에 나선 양 팀에서는 정규이닝 9회까지 마쳐야 하고, 투수는 타자 27명을 아웃시켜야 승패가 가려지는 공정한 경기다. 지역 연고를 가진 10개 팀 중에서 정기시즌 성적 5위 팀까지 가을야구를 거쳐 마지막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챔피언을 가리다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승패에 따라 팀 순위가 달라지고 개인기록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감독, 코치나 선수들은 열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하기도 하고, 감독은 팀 승리를 위해 무리한 투수 운용으로 이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감독·코치진이 선수에 대한 믿음 여부에 따라 연승의 좋은 결과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도 하고, 선수들의 멘탈과 감정 추스르기 영향으로 연패가 계속되기도 한다. 이렇듯이 프로야구의 구조에서 경쟁이 상존하고 구단 명예가 달려 있으니 승리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은 사실이다. 승리 전략을 짜느라 매순간 감독과 코치들이 고민하지만 때로는 팬들이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모든 경기가 마찬가지겠지만 선수에 대한 감독의 믿음이 있어야 선수들은 전심전력을 다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기아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은 덕장으로 특히 팀의 에이스인 양현종 선수에게 보내주는 믿음은 대단하다. 얼마 전 한화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선 양현종 선수가 9회초 1사 때까지 1대 0으로 이기고 있을 때 양 선수를 신뢰하고 그대로 두었던바 아웃카운트 단 하나를 남기고 무너져 역전패 당하고 말았는데 투구수가 126구였다. 다음경기에서 양현종 선수는 김 감독의 믿음에 승리로 보답한 것이다.      

반면 한화 이글스의 한용덕 감독이 보인 사례다. 지난 3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배영수 투수는 5회 초까지 삼진 4개를 추가해 통산 1400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KBO 통산 6번째 기록을 세웠으니 현역 선수 중에는 최다였다. 3대 0으로 이기고 있는 상태에서 6회초에 첫 타자에게 2루타를 맞자 투구수 76개에도 불구하고 한 감독은 배영수 선수를 강판시켰다. 잘하리라 생각했던 이태양 선수가 6회 초 홈런 두 방을 맞아 배 선수의 시즌 2승은 날아가고 말았다. 투수 교체가 감독의 절대적 권한이라 하더라도 그 날 한용덕 감독의 때 이른 투수 교체에는 믿음이 없었다. 그래도 그날 압권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베테랑 선수가 고개를 못 든 후배 이태양 선수에게 웃으면서 “커브가 좋았다”는 한마디 칭찬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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