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짐작을 못 했던 건 아니지만 까밝혀진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국민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그곳에도 썩은 물이 흘렀다. 정부는 최근 ‘신(神)의 직장’이라 일컬어져온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를 전수 조사해 발표했다. 그 결과가 국민에게 전하는 느낌은 참담함 바로 그것이다. ‘신의 직장’은 두 말할 것 없이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곳으로 통하는 기회의 문이 공정하게 열려있던 것은 아니었다.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소외돼왔다. 눈 번히 뜨고 기회를 놓쳤다. 연줄과 배경에 의한 협잡이 그들의 기회를 도둑질 해왔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서 밝혀진 채용비리의 실태는 물 밑에 감추어진 거대한 빙산의 본체(本體)가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 전수 조사의 대상이었던 1190개 기관 중 무려 80%인 946개 기관에서 4788건의 크고 작은 채용비리가 적출됐으니 말이다. 맑은 것이 비정상일 지경이다. 정부는 이 중 사안이 심각한 364건에 대해서는 문책 등 징계를 내리고 이 징계 대상 중 109건은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특히 현직에 있으면서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197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42명이 수사의뢰 대상, 나머지는 내부 징계에 처하기로 했지만 수사 의뢰된 42명 중 8명은 기관장이었다. 이들 기관장은 즉시 해임하고 직원들은 업무에서 제외했다. 수사가 끝나 기소되는 직원들은 바로 퇴출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국민들이 접한 취업 비리들은 바다 위에 뜬 빙산의 파편들에 불과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전모를 밝혀놓고 볼 때는 세상이 온통 썩었다는 느낌이 국민에게 전해져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 충분하다. 그렇더라도 더 진실한 실태는 수사가 끝나봐야 안다. 수사가 끝난 뒤의 최종적인 진상은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을 들쑤셔 놓은 것과 같은 황당함과 어지러움을 국민에게 가져다줄지 모른다. 어떻든 우리는 일단 칼을 빼어 들었다. 최후의 진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든 칼을 뺀 이상 완전히 비리의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량한 국민들은 물론 일자리가 없어 실의에 빠진 청년들의 꿈과 기회가 도둑질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도둑을 맞고 있는 형편인데 정부는 마침 청년 일자리 늘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역설을 연출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가 진단하기를 현재의 청년 실업은 ‘국가적 재난 수준’에 다다랐다. 당연한 순서지만 정부가 초조해지며 다급해졌다. 비장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련 부처를 채근하며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불호령을 내린 것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청년은 국가라는 ‘유기체(有機體)’의 허리이며 토대다. 청년들로부터의 신뢰가 무너지는 정부는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진다. 이래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갖게 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아주 중요하다. 이에 정부의 할 일이 많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지만 누구 탓도 할 것 없이 정쟁(政爭)은 지양돼야 하며 일자리는 더욱 늘리고 채용비리는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정부의 직접적인 시혜(施惠)에서 찾아지기보다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을 위한 풍토와 제도를 확립하는 데서 먼저 찾아져야 한다. 그것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비리의 숙정(肅正)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정부의 채용비리에 대한 조사 역시 중요성을 지니며 그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왕에 시작한 숙정 작업이라면 공공기관이라는 한 분야에만 한정하지 말고 민간 부문을 포함한 전 부문으로 확대해 대대적인 숙정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 이를 통해 만연(蔓延)된 채용비리와 불공정 풍토. 이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하며 나라의 허리이며 토대인 청년들이 분노와 좌절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 밝혀진 공공기관들의 채용비리는 너무 다양하고 교묘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솔직히 너무 기가 막히다. 어떤 기관은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선발기준을 변경했으며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채용기준을 바꾸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상상이 안 간다. 능력이 없는 사람을 합격시키기 위해 자격심사나 필기시험을 면제하기도 하고 제출서류를 조작해 서류전형을 통과시킨 기관도 있었다.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기관장이 직접 면접장에 들어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기도 했으며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면접위원을 선정하기도 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 계약직으로 일단 선발했다가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채용절차나 공고 등 모든 절차를 무시해버리기도 했다. 특정인이 시험에서 떨어지자 인사위원회 등을 다시 열어 합격시키기도 했다. 마비된 양식과 양심이다. 혹여 이런 비리들이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이런 오염의 확산을 막는 것도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억울한 피해자는 구제돼야 하며 남의 기회를 빼앗아 취업이 된 사람들은 퇴출돼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지기로는 비리로 합격해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사람이 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닐 것이지만 정부의 방침 역시 피해자는 구제하고 부정합격자는 퇴출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 같다. 다만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어 재(再) 채용으로 구제받기 힘든 경우에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의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차후 대책도 정부는 마련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더는 소를 잃지 않기 위해 나중에라도 외양간을 고치듯이 재발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임을 이해한다. 비리에 연루된 임원, 청탁자 명단을 공개하고 비리 직원의 징계 시효는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며 부정합격자는 차후 5년간 공공기관 응시를 제한하는 것 등이 골자에 포함돼있다. 이런 정도로 공공기관의 채용비리가 발본색원된다면 무엇이 걱정이랴. 그러기엔 우리 사회의 전체적이며 평균적인 모럴(moral) 수준이 많이 모자라지 않는가. 그래서 그것이 걱정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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