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투기 열풍에 휩싸인 가상화폐(Virtual Money, Virtual Currency)는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나 동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촉감이 느껴지는 실물(實物)이 아니다. 다만 컴퓨터에 정보 형태(database)로 존재하고 저장되며 사이버상으로만 거래되는 전자화폐의 일종일 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기술의 하나다. 곧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블록체인 기술(Blockchain Security Technology)’이며 이는 가상화폐의 거래내역을 기록하는 사이버 장부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해킹 차단 기술로 설명된다. 실제인물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中本哲史)라는 사람이 이 기술을 이용해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만든 이후 지금까지 1000여 종의 가상화폐가 만들어졌다. 그중 비트코인 비트코인골드 비트코인캐시 이더리움 리플 라이트코인 모네로 등 500여 종이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 가상화폐의 투기 열풍에 세계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가상화폐가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처럼 악당들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G20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고민이 깊게 배어 있는 발언이다. 이 발언으로 그는 관치경제의 중국처럼 가상화폐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가상화폐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은 늦추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 미국은 2017년 12월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허용하면서도 가상화폐 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성명을 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를 통해 발표했었다. 

그만큼 가상화폐는 지금 당장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많은 나라들에 계륵(鷄肋) 아니면 얼른 뱉지도 삼키지도 못할 거북한 존재가 돼주고 있다. 그 요인의 하나가 다소는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의한 거래의 확실한 비밀보장성이다. 즉 거래의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므누신 장관의 말마따나 악당들을 위해 쓰여진다면 도박 마약거래 비자금조성 돈세탁 탈세 등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투기 및 사행심 조장 측면과 함께 어느 나라 정부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기지 못할 사회악이며 경제범죄들이다. 이래서 중국정부는 무자비하게 가상화폐거래소를 아예 폐쇄함과 동시에 가상화폐 채굴도 금지시켰다. 물론 시장(市場)에 대한 이런 강권(强權) 발동은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이 불가피해 그 같은 과격한 조치로 은밀한 개인 간의 직거래인 P2P(Peer to Peer) 거래나 가상화폐 계좌의 해외거래소 이동까지도 확실히 뿌리 뽑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시장을 잘못 건드리면 덧이 나기 때문에 가급적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조심스럽게 가상화폐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정부가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찌감치 2017년 4월 가상화폐를 법적 결제수단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반 가계에서도 가상화폐로 거래할 수 있다. 대신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이 철저하다. 러시아는 정부 부처 사이에 갈등을 빚고는 있지만 재무부가 모스크바 증권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도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를 검토하는 등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가상화폐의 투기성이나 경제사회적 부작용에도 그 첨단 기반 기술의 유용성과 확장성, 응용성 등에 눈을 돌려 투기성이나 부작용은 해소하면서도 시장에서의 가상화폐제도의 연착륙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바로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으며 물류 유통 금융 분야의 혁신을 이끌 기술로 각광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 등의 금융회사에서 거래 장부를 안전하게 보관·관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지만 ‘블록체인’은 이런 것 없이도 안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최첨단 기술인 것이다.     

어떻든 이 같은 가상화폐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이는 투기 열풍은 다른 나라들과 유사하면서도 매우 특이하다. 말하자면 뜻밖의 행운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로또 광풍과 같은 사행심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점이 특이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최악의 취업난과 신분고착화로 꿈을 잃은 세대, 희망을 잃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태(ennui)에 시달린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붙잡아주고 길잡이가 돼줄 스승도 없다. 이럴 때 쉽게 그들의 ‘출구’가 돼줄 수 있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딘가로의 ‘쏠림’이며 ‘몰입’이다. 그것이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 열풍이라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어느 장관이 가상화폐의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했을 때 투자자들은 아우성을 쳤다. ‘정부가 언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어본 일이 있느냐’고 절규하는가 하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정부를 심판하자’고 하기도 했다. 정부가 투기 열풍을 잠재우려 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시장의 속성은 살피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나간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실책이었다. 결국 한발 물러섰지만 신뢰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을 제외하곤 어느 나라도 거래소를 폐지하려는 과격한 발상을 할 만큼 조심성을 발휘하지 않는 나라는 세계에 더는 없다. 시장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탈이 난다. 한국의 경우는 희망을 잃은 젊은 세대를 안고 있으며 지방선거까지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이런 소동을 치른 며칠 뒤 조정된 정부 입장이 발표되긴 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가상화폐 문제가 일단락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발표대로 실명제를 실시해야 하고 투기와 불법은 강력 단속해야 하며 블록체인 기술은 지원 육성해나가야 한다면 이것만 해도 벅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깊은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더 깊은 고민, 소는 잡지 않고 어떻게 쇠뿔을 뽑느냐, 즉 시장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가상화폐의 투기와 불법을 효과적으로 근절하느냐 하는 큰 숙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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