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변호사가 31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1
서기호 변호사가 31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1

 

“대법원 상고법원 추진 때부터 사찰 시작

수원지법發 판사회의 전국으로 확대될 듯

증거 확보하면 양승태 사법 처리도 가능

원세훈 재판 靑교감설은 있을 수 없는 일

임종헌 컴퓨터와 760개 암호파일 개봉해야”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임용에 탈락한 서기호 변호사(48, 사법연수원 29기)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31일 3차 조사를 충분히 해야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강제수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2월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서 변호사는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판사 뒷조사 문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수원지법을 시작으로 한 전국판사회의가 전국 법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특정지역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 법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처리 가능성에 대해 “객관적인 물증이 이번 문건에서 나온 상태는 아니다”며 “하지만 (문건을) 추가로 강제개봉을 해서 증거를 확보하면 그의 사법 처리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측면에 동의한다”면서도 “법원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최대한 많은 파일을 강제개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강제수사의 시기는 늦춰도 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2009년도 신용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 때부터 사법행정권을 빌미로 재판에 개입하는 문제가 불거졌다”며 “그때 적당히 덮고 넘어갔기 때문에 결국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기호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이번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을 접한 심경은 어떠한가.

기어이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도 신용철 대법관 사건 때 제가 판사로 근무하면서 우려했던 법원행정처의 변질된 모습으로 인해 결국 큰 사고가 터졌다고 본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밀어붙이고 올인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법원 내부의 판사들을 설득하러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사찰이 시작된 것 같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을 어떻게 보고 있나.

블랙리스트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범위를 좁게 해석한다. 위험인물에 대한 감시 내용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인사상 불이익까지 있어야 블랙리스트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국민이 블랙리스트 하면 떠오르면 느낌은 감시당한다는 것이다. 판사 뒷조사 문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블랙리스트다. 실제로도 이탄희 판사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또 이번에 조사된 내용 중 임종헌 전 차장의 컴퓨터가 개봉되지 않았고 760개 암호 파일이 열리지 않았으며 검색어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 때문에 파일이 추가로 더 나올 수 있다. 거기에다 강력한 인사상 불이익까지 담긴 문건이 나올 수도 있다. 이번 건만 가지고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일선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리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는데, 판사회의가 전국 법원으로 확산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어느 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리기 시작하면 열리기 시작하면 다른 법원으로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이 사안이 특정지역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 법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안 자체가 판사 사이에서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고 충격이다. 전국적인 판사회의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수원지법의 판사회의가 단독판사회의가 아니고 전체판사회의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2009년도 신용철 대법관 사태 때부터 판사회의가 열렸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단독판사회의만 열렸다.

당시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의 독립 침해라고 보는 것이 단독판사들의 일반적인 견해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부장판사급 이상의 고위 간부는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수원지법 판사회의는 부장판사까지 참석하는 전체판사회의다. 오히려 부장판사급에서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회의의 확산 가능성이 크다.

-시민단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는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어떻게 보나.

이번 문건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심증만 있는 셈이다. 다만 객관적인 물증이 이번 문건에서 나온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추가로 강제개봉을 해서 증거를 확보하면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처리도 가능하지 않겠나.

-상고법원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법관과 학술모임이 사찰 대상에 올랐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국회의원 시절) 4년 동안 국회 법사위에 소속됐다.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대법원에서 본격적으로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4년 말경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상고법원 제도가 담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홍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 대법원이 모든 법안을 만들고 홍 의원 이름으로 발의했다. 이른바 청부입법이라고 한다. 또 160여명 이상의 의원이 (법안) 발의에 찬성했다. 그중에는 민주당 의원도 상당수 있었다. 처음엔 (법안을) 잘 모르고 친분 때문에 동의해줬는데, 제가 (상고법원 추진의) 음모가 있고 부작용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견해를 바꿨다.

그리고 2015년 1년 내내 법원 예산의 상당 부분을 홍보에 투입해 무리하게 추진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왜 이렇게까지 입법 로비 수준으로 하는지 그 배경을 추측해 보니, 당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에 협조가 가능하다고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된다. 당시 법무부, 검찰에서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통과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대대적으로 밀어붙이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김 전 실장 쪽과 교감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추가조사 문건에서 사실이라고 드러난 것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은 검찰이나 특별검사가 강제로 수사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강제수사는 이뤄질 가능성이 있나.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증거를 반드시 확보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측면에 동의한다. 그러나 강제수사를 당장 착수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이 사건이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고,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로 작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추가조사 문건이 나온 뒤로 전격적으로 법원행정처장이 교체됐다. 법원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최대한 많은 파일을 강제개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따라서 강제수사의 시기는 좀 더 미뤄도 된다고 본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뒷거래를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인가.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구체적인 뒷거래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 건 아니다. 그리고 상고법원 문제는 청와대와 대법원의 공모 아래 이뤄졌다기보다 대법원의 희망사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상고법원은) 관심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상고법원에 목을 매는 대법원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활용했고, (대법원을) 길들이기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구속되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것을 제안했고, 실제 사건은 전합합의체에 회부돼 만장일치로 파기환송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 역시 가능한 일인가.

그 부분은 개관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는 기준에 따라서 볼 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즉 소부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판례의 변경이 필요한 때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데 원세훈 사건의 경우에는 13대 0으로 전원합의체 판결이 났다. 여기에서 보듯 증거능력에 관한 의견이 갈린 상황이 아니었고, 판례 변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 번질 수 있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점 때문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그 자체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 개선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임종헌 전 차장의 컴퓨터와 760개 암호파일을 개봉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법원행정처 내부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오는 2월 정기인사 때 관련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사건에 관여됐던 판사에 대한 설득작업을 통해 스스로 파일을 제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후속조치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능할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김 대법원장의 의지가 확고하고 그가 살아온 과정이나 법원 내에서 보여준 모습이 기존 행정처 출신 사법관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춘천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사무분담과 관련해 법원장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판사들의 협의에 의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했다. 지금까지 나온 사법관료, 법원행정처 권력의 잘못된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의지와 실행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또 대법원장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판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추가조사를 결의하기까지 일선 법원 판사들의 판사회의, 전국법관회의를 통해 원칙적인 입장이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판사회의, 전국법관회의는 지속적으로 열릴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있는 것이다.

-3차 조사가 진행될 경우 비밀문건 파일 760개와 임종헌 전 차장의 PC를 조사할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연히 될 것이라고 본다. 대법원장의 의지와 법원 현직 판사 사이에서의 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의 강제수사가 될 수준까지 추가적인 증거자료가 확보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3차 조사를 충분히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강제수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끝까지 해야 하는 사안이다.

-현직 여검사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비단 검찰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법원 내에서도 그런 소문이 있었다. 결국 공통적인 특징은 피해자는 똑같은 판검사가 아니라, 수직적 피라미드 관료체제의 맨 밑에 있는 하부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가해자는 권력자에 의해 비호될 수 있는 엘리트 판검사이기 때문에 밝힐 수도 없었던 일이 많았을 것이다. 법조계 특히 법원·검찰 조직이 규모가 작고 서로 건너서 아는 사이가 되다 보니, 더욱 쉬쉬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지현 검사님이 이번에 용기를 내주신 것에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무엇인가.

2009년도 신용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 때부터 이미 사법행정권을 빌미로 재판에 개입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그때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적당히 덮고 넘어갔기 때문에 결국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터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적당하게 덮어두면 나중에 크게 터지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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