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적폐보다 무서운 시폐
[이재준 문화칼럼] 적폐보다 무서운 시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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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율곡 이이(李珥)와 토정 이지함(李之菡)은 선조 때 인물이다. 조정의 신료들이 좋은 얼굴빛으로 임금의 분부에만 귀를 기울일 때 두 분은 달랐다. 율곡의 시폐(時弊) 상소를 보면 임금의 허물을 주저 없이 비판하고 있다. 

- …전하께서는 선(善)을 좋아하는 것이 지극하지만 도(道)를 믿는 것은 독실하지 못합니다. (중략)… 전하께서 도를 중시하고 선비를 존중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호령을 내리고 거조하는 데 있어 시속을 따르는 자를 좋아하고 비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하략)… -

율곡의 상소는 선조의 귀를 거슬리게 했으나 진심어린 간언이었으므로 벌을 받지 않았다. 한편 토정은 선조의 인재 기용에 내심 불만이 많았다. 

- …조정은 인재를 저장하는 창고이며, 모든 냇물이 바다로 모이는 것과 같이 수레에 싣고 말로 계량해야 할 만큼 많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진실로 능히 이것을 잘 개발할 수 있다면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중략) 쥐를 잡아야 하는 자리에 호랑이를 데려다가 앉혀 놓거나, 사슴을 잡아야 하는 자리에 고양이를 데려다 앉혀 놓으면 그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임금이 사람을 잘 못쓰면 돌이킬 수 없는 환난을 당한다. 그래서 인재 기용이 중요하고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적폐청산’을 위해 시폐를 양산한 광해군 때 이이첨은 결국 주군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한 과오를 범했다. 

이이첨은 광해군이 임금이 되는 데 가장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래서 왕은 이이첨의 전횡을 눈감아 주었다. 이이첨은 적이 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모함해 역적으로 몰아 처단했다. 백성들과 언로가 이이첨의 오만함을 극력 비판해도 광해는 듣지 않았다. 이이첨의 오만방자를 알았으면서도 결국 내치지 못해 비극의 나락에 빠진 것이다. 

순조 때 평양기생 초월은 십대 나이로 임금에게 칼 상소를 한다. 죽음까지 각오한 극단적인 단어로 시폐(時弊)를 들추어 부조리를 고발했다. 초월의 상소문은 당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임금의 우유부단한 국정처신까지 건드려 반골 선비들의 고발문학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상소문 내용 속의 백미는 임금의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그녀는 순조가 궁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여악(女樂, 기생)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유약함까지 비판했다. 그녀는 왕이 체통을 잃고 백성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기강이 서지 않으며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했다. 

요즈음 우리나라 형편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의 각급기관 수장 임명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져 있다. 공관장의 인사에서부터 국영기업체의 장 선임에 이르기까지 ‘캠코더’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기용해야 한다는 언론의 진정어린 고언까지 외면하고 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안자(晏子)는 군자였다. 중국 역사에서 안자는 모든 공직자의 귀감이 됐다. 조정에서는 군주를 충직하게 보좌했고,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하게 원칙과 예의를 지켜 제나라의 위상을 높였다. 안자는 ‘화(和)와 동(同)’에 대한 논증으로 유명하다. 군주에게 무조건 부회하는 것을 동(同)이라 했고, 군주의 잘못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을 진정한 화(和)라고 했다. 대통령 측근에 ‘화’ 편에 서는 안자 같은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 ‘캠코더’ 인사만을 고집한다면 국정이 잘 굴러갈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적폐보다 무서운 시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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