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동매(冬梅)가 피면 생각나는 퇴계정신
[이재준 문화칼럼] 동매(冬梅)가 피면 생각나는 퇴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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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일생 추위에 떨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 왜 동매(冬梅)는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 서둘러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일까. 동매는 매화 잎 순이 나오기도 전에 가장 아름답고 앳된 꽃망울을 터뜨린다. 혹한을 이기고 눈발이 날리는 시기에 피는 것이라서 설중매(雪中梅)라는 별명도 붙었다. 

옛 선비들은 온갖 역경을 인고하고도 변하지 않는 절개를 사랑했다. 시문을 사랑했던 여류들도 고절함을 아껴 매화의 향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많다. 

매화를 사랑한 선비들이 많았지만 그중 퇴계 이황의 풍류는 특별했다. 천원짜리 지폐 퇴계 상 옆에 매화가 그려져 있는 것도 그의 애매일화를 감안한 것일 게다.

퇴계는 48세 나이에 단양군수로 부임해 매화와 인연을 맺는다. 관기 두향이 퇴계가 매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가꿔 오던 매화분재를 선물한 것이었다. 

두향은 음악뿐 아니라 시문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홀로 단양에 와 집무하던 퇴계로서는 당대 최고의 도학군자였으면서도 두향의 아름다움이 위로가 되었을 게다. 그녀는 매화향기처럼 군자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퇴계가 다른 사대부들처럼 기녀와 염문을 가질 수도 없었다. 

퇴계의 시 가운데는 매화를 노래 한 것이 많다. 서울 한성 집에 있는 분재 매화와 주고받은 시속에 두향을 그리는 숨은 뜻이 있다. 

- 고맙게도 그대 매화 나의 외로움 함께 하니/ 나그네 쓸쓸해도 꿈만은 향기롭다네/ 귀향길 그대와 함께 못가 한스럽지만/ 서울 세속에서도 고운 자태 간직하게나 -

퇴계는 운명 직전 분재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두향을 그리워 한 것일까. 두향은 퇴계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복을 입고 단양에서 안동까지 걸어가 먼발치에서 문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퇴계와의 추억이 어린 강선대에서 강물로 몸을 던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 의미가 없었던 두향은 빨리 저승길에 가서 임을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두향과 단양 여러 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퇴계와 두향의 일화는 아름답고도 슬픈 로망으로 회자되고 있다.  

퇴계는 고향에서 68세에 임금에게 시무책을 건의했다. 그것이 유명한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다. 무진년 여섯 가지 올리는 글인데 바로 선조에게 덕치를 베풀라는 간곡한 당부였다. 측근의 참언과 전횡을 막고 올바른 비판을 수용하며 인의(仁義)의 도리를 하라는 것이었다. 유가가 가장 근본을 삼는 것이 바로 ‘인의’가 아닌가. 

이 상소 가운데 마지막 부분이 가장 와 닿는 부분이다. 5조는 군주가 대신에게 진심을 다해 접하고 대간(臺諫)을 잘 채용해 군주의 이목을 가리지 않아야 하며 6조는 항상 자신(군주)의 과실을 반성하고 정치를 수정해 하늘의 인애(仁愛)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2월이 되니 벌써부터 남쪽에서 동매 소식이 전해진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퇴계의 매화송과 더불어 선생의 올곧은 삶과 사상이 절실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복잡해지는 동북아 안보환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분열되는 민심, 적폐청산으로 인한 갈등과 여야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대치, 계속 꼬여만 가는 경제 문제, 새해 벽두부터 왜 화마마저 선량한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어려운 시기 이럴 때 대통령은 중심을 잡고 올바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퇴계의 간곡한 간언처럼 반성할 일은 반성하고 인의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신망을 얻는다. 아직은 찬 겨울, 동매 소식이 오는 이번 달 퇴계와 두향의 로망이 어린 충북단양에서 동매제(冬梅祭)라도 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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