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눈 오는 지역에서는 흰 눈과 함께 맞는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가 익숙하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올 크리스마스엔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기다리던 눈 대신 대륙에서 날아든 시커먼 미세먼지가 우리를 공격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었던 사람들에게는 여간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지구 전체가 우리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할 수 있는 지역으로만 구성돼 있지는 않다. 지역에 따라서는 땡볕이 내려쬐는 열대 및 아열대지역일 수도 있고 건기(乾期), 우기(雨期)에 접어든 지역일 수도 있다. 기후나 날씨가 ‘메시아(Messiah)’ 출현의 본질을 좌우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따라 크리스마스의 문화와 풍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뭇가지와 같은 뿔을 한 순록(reindeer)이 끄는 산타클로스 썰매는 크리스마스 철에 날개를 활짝 펴게 되는 아이들의 즐거운 상상이다. 순록이 썰매를 끄는 것은 엄연한 팩트(fact)이지만 산타클로스는 물론 ‘상상’이며 ‘연출’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같이 순수한 동심이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하는 몽환(夢幻)적 이미지다. 목하(目下) 그 북극권 순록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면 동심이 멍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눈이 깊이 쌓여 그 속에서 순록이 먹는 이끼가 자라고 보호돼야 함에도 엉뚱하게 비가 내려 얼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크리스마스 문화나 풍속도의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기후변화나 기상 이변은 이처럼 크리스마스의 맛과 멋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어떻든 우리에게는 뿌연 미세먼지의 공세를 받는 크리스마스보다는 펑펑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가 익숙하고 좋다는 것을 더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 2017년 크리스마스는 유례없이 삼엄한 경계 속에서 치러졌다. 미국은 심지어 크리스마스 경비에 저격수들을 동원해야만 했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광장 등 시내 요소요소가 그 대상 지역들이었다. 올해가 그만큼 위험한 해였음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전국 쇼핑센터 전철역입구 관광명소 등의 경비와 검문검색에 군경 10만여명을 투입했다. 그런가 하면 연말마다 인파가 들끓던 파리 샹젤리제거리의 크리스마스 시장은 아예 휴장토록 조치했다. 비단 이들 나라들만이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몰락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세력 IS의 테러가 우려되는 나라들은 다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베를린에 겹겹이 콘크리트 방호벽을 쌓아 트럭 등에 의한 테러 기도에 대비했으며 이탈리아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서는 로마의 나보나 광장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풍경으로만 본다면 지구촌은 점점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갈수록 위험한 곳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소회를 억누를 길이 없다. 흔히 지구촌 성원들의 일체감 조성을 위해 ‘우리는 하나’나 ‘세계는 하나’라는 구호들을 외쳐댄다. 하지만 그것들은 심화되는 지구촌의 분쟁과 대립 속에서 필시 허구로서 의미가 퇴색해간다.

이스라엘의 국제도시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그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이른바 ‘아브라함 종교(Abrahamic religions)’의 공통 성지로서 언제라도 깨질 위험성이 농후한 살얼음판 같은 평화 위에 공존해왔다. 그것이 그나마도 가능했던 것은 고조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완화하기 위해 UN이 1947년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이라고 선포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선언은 ‘6일 전쟁’으로 불리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요르단 영토였던 동(東)예루살렘까지를 점령해 전체 예루살렘을 그들의 수도로 선포했음에도 실질적인 효력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 세계가 이스라엘의 그런 선포를 인정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갑자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며 이스라엘의 행정수도인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살얼음판 같은 평화의 토대를 위협하고 나섰다. 그 바람에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경의 경계 속에서도 예루살렘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살벌함 바로 그 자체였다.

선거로 뽑히는 정치인의 언행에는 항상 바탕에 깔린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것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유대인인 사위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 고문의 입김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그는 또 다른 논쟁거리를 만들었다. 그는 대통령후보 시절에 이미 “대통령이 되면 모든 가게에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간판을 다시 달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함으로써 심중을 내비치긴 했었다. 그 말대로 전임 오바마 대통령 같으면 시비에 말리는 것이 싫어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 또는 둘 다를 함께 썼을 것을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부러 되풀이 강조해 사용했다. 종교편향성에 대한 시비가 일 것을 빤히 알면서도 역시 자신의 기독교 지지기반 강화를 위해 반발을 무릅썼다. 

한편 누가 뭐라고 해도 크리스마스의 백미(白眉)는 어느 때보다 힘차게 땡그랑거리며 가슴을 파고드는 교회의 종소리와 진솔한 목소리를 음미할 수 있는 데에 있다. 그것은 종교가 달라도 상관이 없다. 진리의 메시지는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와 온 세계에(우르비 에트 오르비)’라는 성탄메시지에서 세계 각지의 분쟁과 그로부터 초래되는 고통에 대해 걱정하며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끈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한반도의 위기가 극복되고 세계 전체의 안전을 위해 상호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도하자’고 했다. 정말이지 그래야 한다. 딴 곳에 정신을 팔 일이 아니요 그런 일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야 크리스마스가 제값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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