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세상보기] 대화 제스처와 당량거철(螳踉拒鐵)의 싸움 - 가슴보다는 냉정한 머리가 필요한 때
[최상현의 세상보기] 대화 제스처와 당량거철(螳踉拒鐵)의 싸움 - 가슴보다는 냉정한 머리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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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주필 

 

한낱 사마귀가 커다란 수레를 막아서며 벌이는 싸움을 고사(故事)에서는 당량거철(螳踉拒鐵)이라 한다. 참으로 턱도 없는 싸움이다. 바로 이런 턱도 없는 당량거철과 같은 싸움을 북의 김정은과 초강대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벌여온 것이 여러 차례다. 그 연장선상에서 둘은 2018년 새해 벽두에 다시 붙었다. 하필 북의 핵문제가 해결의 길에 들어서느냐 마느냐가 결정돼야 하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순간(defining moment)’을 맞이하는 해에 말이다. 

싸움은 북의 김정은이 남과 북에 엇갈리는 메시지를 던진 신년사를 발표한 것이 발단이 돼주었다. 김정은은 신년 육성연설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호언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볼 때 보더라도 강대국의 체모로 보아 가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도 같지만 이미 스스로 싸움닭임을 입증했거니와 가만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되받아치기를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핵 단추가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제발 그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덧붙이기를 ‘로켓맨(rocket man)이 지금 한국과의 대화를 처음으로 원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켜보자’고 했다. 냉정하게는 당량거철인 것이 분명하지만 이렇게 이 둘의 손바닥이 마주치니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이 둘의 말싸움이 재미나는 구경거리에 불과할 수는 없다. 쉽게 내뱉어지기는 하지만 곱씹을수록 핵 단추 이야기는 우리의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김정은은 그의 신년사에서 미국을 직접 상대하려 했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던 우리에게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그와의 말싸움에서 트럼프는 이 대목을 짚고 넘어가기를 ‘대북제재와 압박들이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김정은의 남(南)을 향한 제스처는 아리송하고 갑작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말대로 사방이 사면초가로 막힌 김정은이 마지못해 남쪽으로 눈을 돌려 꽉 막힌 출구와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 않아도 남은 북에 대화하자며 매달리고 있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엔 협박을 아끼지 않았지만 우리를 향해서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평창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좋은 계기’라면서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해 뜻 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덕담 수준의 수사(修辭)가 아니다. 그는 말하기를 ‘남조선 당국은 미국의 무모한 북침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화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 돌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복심(腹心)에는 우리의 생존의 근간인 한미동맹의 이간과 대북 억지력 유지에 필수적인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중단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림이 자리 잡고 있다.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노림이 없었다고도 보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꾸준히 북과의 대화를 요구해왔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무사하게 치러내야 하는 절박함은 그런 대화에 대한 요청을 더욱 갈급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보면 김정은의 대화 제스처는 우리가 매력을 느끼고 끌리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맞추어 던져진 것이 아닐 수 없다. 심한 비유일 것 같지만 배고픈 물고기가 낚싯밥을 덥석 물고 늘어질 절호의 기회를 택했다. 이런 때 기우(杞憂)에 그치고 말았으면 하는 걱정은 정부는 반드시 흥분된 가슴으로 덤비지 말고 얼음처럼 차가운 머리로서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다리던 대화 신호가 온 것에 즉각 환영 논평을 발표하는가 하면 날짜를 정해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판문점 채널을 통한 연락을 시도해 통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절차적 진행이 순조로우며 일을 풀어가는 정상적인 과정에 부합한다. 이렇게 차분히 풀어가는 것이면 좋다. 들떠 덤비지 말고 허둥대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각의 세력들처럼 남북이 만나기도 전에 벌써 북이 들고 나올 법한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 사이게 근심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이 노리는 한미동맹의 균열과 남남 갈등의 단초는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 하긴 여권 일각을 비롯한 일부의 들떠 허둥대며 덤비는 모습 역시 근심거리이긴 마찬가지다. 더구나 남북 대화의 고삐는 우리에게 확실히 잡혀있는 것도 아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성급한 태도는 성공적인 대화를 담보할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아무 실질적 소득이 없는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매달려 시간만 끄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 북의 의도에 말려 핵 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만 벌어주는 허무한 회담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성과가 무위로 되돌아간 과거 회담 또는 실패한 회담 등을 거울삼을 필요도 있다. 정부가 북의 대화 제스처와 관련한 대응에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점은 다소 안심을 준다. 남북 대화가 한미동맹의 트랙에서 조금이라고 일탈하거나 동맹의 갈등을 조성하는 것이면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안보에 충실한 대화나 회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담의 본질은 평창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이루어감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북의 비핵화 실현에 닿아야 하고 그 절차를 조속이 밟아가는 과정에 초점이 주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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