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 관계자들의 대북 발언이 시도 때도 없이 널뛰기를 해 종잡기가 어렵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느닷없이 ‘북과의 조건 없는 만남’을 제안했다. 이 제안 역시 미국이 직전까지 협상기조로 고집하던 ‘비핵화 의지의 확인’이나 ‘핵과 미사일 시험 60일 중단’과 같은 대화 조건들을 일거에 폐기한 것이어서 그 배경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그냥 만나자. 원한다면 날씨 얘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 북한 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을 때도 미국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북과 은밀한 접촉을 가져왔었다. 그런 미국이기에 이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이 전적으로 북의 의도를 도외시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북과 어떤 은밀한 교감을 갖고 이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인지, 동시에 이런 제안을 발표하기까지 한국 정부와도 충분한 협의를 벌여왔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문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한국을 뛰어넘는 일(skipping over)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그의 그런 약속이 이번 일에서도 실증이 됐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소회를 국민이 갖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와 함께 국민은 한반도 및 대북 문제에서 좀 더 정리된 정보를 정부와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는 점을 정부 당국자들은 유의해야 한다. 이런 욕구는 정부가 풀어주어야 마땅하다. 국민이 정확한 정보에서 소외되면 막연한 불안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으며 일정한 지향점 없이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것은 없다. 더구나 미국으로부터 전달되는 대북 관련 발언들이 수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리된 팩트(fact) 갈증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헷갈리지 않게 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떻든 틸러슨의 조건 없는 대북 대화 제안은 워싱턴에서 한국교류재단과 애틀랜틱 카운실이 공동주최한 ‘환태평양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이라는 이름의 세미나에서 나왔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그 내용이 이른바 ‘틸러슨 플랜’으로 불려왔다는 것인데 그 내용의 공개는 이처럼 다소 전격적인 방식을 취했다. 틸러슨의 발언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다른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는 대북 군사옵션의 선택이 대세의 흐름인 것처럼 분위기가 잡혀가는 듯했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발언은 적어도 일견 말로써는 분위기의 반전을 이룬 것이며 그것도 극적인 대반전이다. 이에 따라 그의 대화의지는 일단 강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한 그의 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우리가 미국의 널뛰기에 헷갈리든 당혹스러워하든 전쟁에 관한 얘기를 안 듣는 것만도 귀가 편해진다.  

하지만 틸러슨의 강렬한 대화의지 표명에도 미국의 실체적 대북 관계 전반이 급격히 바뀌었거나 바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하며 순진하다. 도리어 ‘틸러슨 플랜’은 군사옵션을 준비해두고 있는 미국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북에 제공하는 마지막 대화의 기회일 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의 동시에 나온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며 주목할 만하다. 그도 이날 어느 행사에서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했다. 틸러슨 역시 그의 발언 말미에서는 ‘외교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군사적 옵션도 준비돼있다’는 경고를 던졌었다. 이렇게 볼 때 두 사람의 발언은 기저(基底)적인 의미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렇다면 틸러슨 플랜에도 미국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으며 ‘틸러슨 플랜’ 역시 대북 압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래서 필시 미국은 양동작전으로 북한 흔들기에 나섰다고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해진다. 한쪽에서는 전쟁을 말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헷갈리게 대화를 말하는 상항이 그것을 웅변한다. 얼핏 엉망인 것처럼 보여도 다소의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 요점은 하나, 최후의 군사옵션을 배경으로 토끼 몰이하듯 북한을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로 몰고 간다. 더욱이 미국은 북한을 다룰 다양한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틸러슨이 공개했거니와 미국과 중국은 이미 북의 예상되는 급변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왔음이 밝혀졌다. 북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재료이며 북을 뛰어넘는 강대국 사이의 거래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강대국에 의한 원심력에 북 정권이 결딴나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 북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북이 핵을 품에 안고 있은들 자신들의 생존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인들 이를 모를 턱이 없다고 본다면 그들도 달라질 때가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을 까무러치게 할 일도 공개됐다. 물론 의도적인 공개라 보이지만 북한에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야만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약속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점을 틸러슨이 공개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은 이미 북한으로 인한 양국의 무력 충돌과 세계대전의 방지를 위한 대책을 긴밀히 협의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메시지로 던졌다. 여기에 덧붙여 미-중 간에 유사시에 대비한 핫라인(hot line)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도 공개됐다. 북한에서의 급변사태라는 것은 북한 내부의 군사 정변 등 비상사태를 말한다. 이런 언급들은 미-중 양국이 북한의 어떤 사태에 관한한 서로 협의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쯤해서 북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핵을 가지나 안 가지나 강대국 손 안에서 자신들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핵보다 더 안전하게 그들을 지켜줄 수도 있다. 그래서 틸러슨 플랜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든 안 하든 그것이 바로 이 같은 북의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면 족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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