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김영란법 개정안이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 전원위원회를 통과했다. 거의 똑같은 방안이 지난 27일에는 부결됐는데 2주 사이에 위원들의 인식이 180도 달라졌단 말인가. 어떻게 6대 5로 부결됐었는데 전원일치 합의로 같은 내용이 번복될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하는 미래세대가 보고 들을까 두렵다. 부결된 뒤 반대의견을 표명한 외부위원을 물밑접촉을 통해 설득작업을 벌였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권익위를 압박하지 않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박은정 권익위원장은 “가액 범위가 조정되더라도 인허가·수사·계약·평가 등과 같이 공무원의 직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으면 현재와 같이 일체의 음식물·선물을 받을 수 없으므로 가액 범위를 일부 조정한다고 해서 법의 본래 취지가 후퇴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을 허무는 물꼬를 튼 인물이 바로 박 위원장인데 변명치곤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후퇴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인가. 이것도 올리고 저것도 올려도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처벌 받으니 괜찮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김영란법이 왜 필요한가? 권익위는 특정 직군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권익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데 박 위원장은 그 역할을 포기했다.   

전원위원들 가운데는 우려를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부대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기록을 남기기 차원 이상의 의미는 못 가지는 몸짓인 것 같다. 의견이 다르면 명확히 다르다고 말하고 표결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시기에 따라 입장을 번복할 거면 전원위원으로 국가의 녹을 먹으면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 청산과 국민안전을 맨 앞자리에 놓고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한 정부다. 부패는 가장 시급히 척결해야 할 적폐다. 부패는 국민안전을 뿌리부터 해친다. 공동체를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패한 사회는 구제불능이다. 완전 뒤집고 새로 건설하는 게 낫다. 문재인 정부가 부패를 조장하는 길이 명백한 김영란법 개악을 시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김영란법 조항 하나가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물 가액 5만원은 김영란법 빼대이다. 이걸 허물면 김영란법이라는 집은 무너지고 만다. 기둥이 무너지는데 집이 안 무너질 재주가 없지 않은가. 

농축산식품부 장관이 김영란법 개정을 외치는 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외면하긴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는 농수산업이라는 특정분야의 수장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장관이다. 장관 자리는 자신의 관여하는 직군의 이해를 대변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부패와는 타협할 줄 모르는 공직자가 돼야 한다. 바른 공직자라면 모처럼 만들어진 부패방지법을 손댈 생각을 하는 대신에 관련 분야의 개혁을 통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농업 분야에 켜켜이 쌓인 불합리와 비리 구조를 해체하고 다단계 유통 구조 개혁을 통해 농어민의 소득 보장의 길을 열고자 할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청문회 시절부터 막무가내로 김영란법 개악을 밀어붙인 인물이다. 그는 농업이 주산업인 지역 출신이다. 국무총리가 이름 그대로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 아닌가. 특정 직군을 대변하라고 존재하는 직위가 아니다. 이 총리는 총리로서 본분을 망각했다. 적폐 청산을 진두지휘하고 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공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를 해임시켜야 한다. 자손만대로 물려줄 유산이라 할 김영란법의 기반을 허무는 데 일등공신 역을 자처한 이낙연 총리는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을 하기 바란다. 

김영란법 시행령 45조는 “2018년 12월 31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하여 개선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 말은 내년 말까지는 김영란법을 손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적어도 2년은 시행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그 때 검토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김영란법 개악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의원들과 정부 관료들은 결국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한 것이다. 

김영란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지난해 말부터 경북지역 출신 국회의원 중심으로 법 개정안이 봇물을 이루더니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이 부패방지법을 개악하는 행동대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정신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김영란법 허물기를 멈추어야 한다. 끝내 문재인 정부가 김영란법을 개악한다면 정통성은 심대하게 훼손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지지한 계층이 지지를 철회하면 정권은 급격히 힘을 잃는다. 

어떤 정치세력도 아무런 이유와 명분이 없이 권력을 획득하지 못한다. 시대정신을 담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집권하더라도 의미는 없는 것이며 그런 정권은 단명하거나 역사에 오명을 남기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패척결이라는 시대정신을 훼손하고 오명을 얻는 정부로 남기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김영란법을 개악하면 원칙을 훼손하고 역사를 퇴행시키는 정부가 된다. 지금 민심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법 개악에 반대한다. 민심에 순응하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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