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제천 참사 현장에 여야 정치인들이 여럿 찾아갔다. 참사 현장에 간 정치인 가운데는 자신이 무엇 하는 존재인지 망각한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참사 현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속죄와 반성이다. 반복되는 참사를 왜 못 막았는지 진솔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정치를 똑바로 했으면 터지지 않았을 사고와 참사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상대방 비난에 급급하다. 나는 잘했는데 너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안전을 정쟁의 소재로 삼는 순간 문제는 더 꼬이게 되고 안전한 사회는 더욱 멀어진다. ‘근본적인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똑같이 잘못하는 정치세력끼리 도토리 키 재기 하게 된다.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해서는 안전한 사회를 향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안전해지려면 안전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안전이 정쟁거리가 되면 안전실태 파악은 물 건너가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가 드러나 정치적으로 손해 볼까 봐 진상규명을 외면하거나 상대방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비난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방과 비교를 통해 책임을 면하고 위신을 세우고자 한다.  

참사 현장을 방문한 홍준표 자유당 대표는 참사를 정쟁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참사를 정쟁거리로 삼는 발언을 쏟아냈다.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세월호보다 더 잘못 대응해 사상자를 키운 제천 참사를 어떻게 책임지고 수습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누가 봐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발언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외면함으로써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발의된 수많은 안전 관련 법률 제정을 미루고 소방관 증원을 반대한 정당의 대표가 바로 홍 대표다. 자신의 책임을 말하지 않고 집권 세력의 책임만 말하고 남의 일처럼 수습을 지켜보겠다니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가연성 내장재 문제, 필로티 건물에 대한 대책을 못 세워 큰 화재로 번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 홍 대표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 집권하는 동안 제천 참사와 똑같은 유형의 의정부 참사가 났다. 바로 그때 외장재 문제와 필로티 건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화재안전점검 체계를 혁신했다면 제천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작은 사고로 끝날 문제였다.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거리를 찾는 데 골몰하는 건 제1야당의 대표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제천 현장에서 “누적된 습관과 관행을 고치지 못하면 이런 후진적인 안전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소방인력 증원에 대한 아쉬움을 거듭 토로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제천 참사의 근본원인을 회피하는 말이다. 민주당은 의정부 참사 직후 화재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집권한 지 7개월이 흘렀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담은 안전혁신 플랜을 내지 않았다. 민주당 또한 제천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점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가 먼저고 이제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해야 옳다.    

참사 현장에서 안철수 대표는 “국가가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처참할 따름”이라면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 대한민국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왜 국가가 기본도 못 지켰는지, 왜 세월호 참사 후에 달라지지 않았는지, 본인의 책임은 없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의정부 참사 때 무슨 대책을 냈는지, 소방관 증원에 대해 본인과 당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성찰하고 죄송하다고 했어야 했다. “참사 사고를 하나씩 점검하고 필요한 제도를 고치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안 대표의 말이 왜 공허하게 들리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정치인과 매체, 학자들이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한다. 국민들 가운데 안전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서 못살겠다고 한다. 문제는 각 개인이 안전에 민감하다고 해서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와 국회가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안전플랜을 제시하며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내고 ‘자연스런 생활화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공적 기관의 역할이 빠진 채 개인의 안전불감증만 탓하면 백년이 가도 안전한 사회는 오지 않는다. 세월호를 무한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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